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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매미는 여전히 힘차게 울고 해님도 여름님도 여전히 그들의 매력을 한없이 뽐내고 있다. 가끔은 머리가 멍해질 정도다. 언젠가 여름 루마니아의 수도 부카레스트에서 열린 음악페스티벌에 참석 했던 적이 있었다. 숙소에 에어컨은 없었고 더위는 굉장했다. 길거리에 들개들이 정말 꼼짝 않고 누워있어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저녁이 되자 꿈뜰 꿈뜰 움직이는 게 좀비들개들처럼 보였다.

그 뜨거운 더위 속 감기까지 걸렸던 나는 아마도 더위를 먹었던 것 같다. 캠프가 끝날 쯤 나의 감기도 나아가고 뭔가 좀 가뿐해진 느낌에 '오늘은 좀 시원한 것 같지?'하고 말하자 옆 친구 왈 '응, 아름! 어제는 40도가 넘었었는데 오늘은 38도래~'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며 웃음이 난다. 그땐 에어컨이 없어서 아팠는데 10년쯤 지난 지금은 에어컨 때문에 감기에 걸린 나를 보며 또 한 번 웃는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부채를 하나씩 들고 나무그늘을 찾아 앉아있는 흔한 모습들을 떠올려보며 그때보다 나이가 많아진 나는 조금씩 그들을 이해한다. 단지 심심해서 나와 있던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그 그늘이 참 좋다는 것을 말이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Buena Vista Social Club>'이란 잊혀진 쿠바음악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화면으로도 전해지는 더위 속 강렬한 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 가난해 보이는 사람들 그리 깨끗해 보이지 않는 거리의 허름한 건물들마저도 영화에서 들려주는 음악덕분에 건강하고 활기차보이며 멋지게 보였다. 기타리스트이자 영화음악 작곡가로도 유명한 미국의 프로듀서 라이쿠더는 쿠바를 방문했을 때 쿠바가 혁명이 나기 전 유명했던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이란 사교클럽에서 연주했던 음악인들에 대해 듣게 된다. 하지만 혁명이후 공산화 되면서 그러한 음악들도 사라지게 되자 클럽은 문을 닫고 음악인들은 흩어져 다른 일을 하며 살아간다. 30여년이란 세월이 흘러 70세가 넘은 할아버지가 되어 다시 연주 하게 된 그들은 단6일만에 즉흥적인 녹음으로 음반을 만들어내며 예전의 연주했던 클럽의 이름을 따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 이라고 이름 짓게 되는데 이 음반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며 수 백 만장의 음반을 판매하고 그래미 어워드 수상, 빌보드 차트 1위 등 파란을 일으킨다. 얼굴에 주름이 가득하고 폼 나지 않는 양복을 입고 어딘가 모르게 어색한 할아버지들이 연주를 시작하고 별 기교 없이 노래를 시작하면 어정쩡해 보였던 그 모습들은 사라진다. 웃으면 더 도드라지는 주름 속에 아이의 순수한 표정과 노인의 여유가 보인다.

대표적인 곡 <Chan Chan:찬찬> '난 알토 쎄드로에서 마르카네로 가고 쿠에토에 도착해서 마야리로가. 너에 대한 내 사랑은 감출수가 없어. 인생에 흐르는 힘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네.'  긴장감을 풀기위해 장난치며 불렀던 곡을 녹음한 <Dos Gardenias>라는 곡 '치자 꽃 두 송이를 주었네 사랑한다 말하고 싶어서 내 사랑. 그 꽃은 당신과 나의 심장이 될 거요' 별것 없어 보이는 가사지만 그냥 지나쳐지지 않는다. 노래를 들으면 가사를 알고 싶어지게 만든다. 정말 힘없어 보이는 작은 체구의 할아버지는 피아노 앞에 앉으면 달라진다. 나도 모르게 '저게 음악이지'란 감탄이 흘러나온다. 영원한 젊음에 대한 동경이 사라지고 내가 겪어보지 못한 세월을 겪어낸 노년에 대한 동경이 생겨난다.

며칠 전 시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즐거운 시간이었다. 딱히 특별한 이야깃거리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아버님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자니 예사로 여길만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우리 꼬맹이가 할머니 손을 보며 '할머니 손에는 나무가 있네' 그랬단다. 잠시 동안 그게 무슨 소리지? 하고 엄마의 손등을 보니 울퉁불퉁 굵은 핏줄이 무성한 나무줄기처럼 가득하다. 아이의 말도 흘려들을게 하나도 없다. 무더운 여름날 손등에 조금씩 더 자라나는 나의 나무를 보며 언젠가 꼬맹이의 꼬맹이가 나를 쳐다보며 말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해 본다. '할머니 손에 나무가 있네…' 지나온 그 모든 세월을 다 겪어 내고 열심히 인생을 살아 온 모든 할아버지 할머니를 존경하며 앞으로의 인생을 응원하며 파이팅! 할머니,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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