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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26대 고종황제의 황녀인 덕혜옹주 결혼기념비.
조선 26대 고종황제의 황녀인 덕혜옹주 결혼기념비.

일본 대마도에 설치된 덕혜옹주 결혼기념비의 '이왕조'라는 문구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일제강점기 대한제국 황실을 격하해 부른 용어인 만큼 일본측에 수정을 요구해야 한다는 주장과 비하가 아닌 가문과 가문의 결혼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이 공존하고 있다.

일본 대마도 가네이시성터에는 조선 26대 고종황제의 황녀인 덕혜옹주 결혼봉축기념비가 설치돼 있다. 덕혜옹주가 1931년 5월 대마도 도주의 후손인 소오 타케유키 백작과 정략결혼하면서 세워졌다. 이후 덕혜옹주와 소오 다케유키가 이혼하자 기념비는 철거됐는데,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으면서 지난 2001년 복원됐다. 현재는 한국인들이 대마도 여행 중 대부분 거쳐 가는 주요 관광지가 됐다.

일본 대마도 가네이시성터에 설치된 덕혜옹주 결혼기념비 위치를 알리는 팻말.
일본 대마도 가네이시성터에 설치된 덕혜옹주 결혼기념비 위치를 알리는 팻말.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은 기념비의 문구다. 이 기념비는 한자로 '李王家宗家伯爵御結婚奉祝記念碑'(이왕가종가백작어결혼봉축기념비), 안내 팻말 등에 한글로 '이왕조종가결혼봉축기념비'라 적혀 있다. 

문제가 되는 단어는 '이왕가'다. 이는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이후 대한제국 황실을 왕공족의 일개 가문으로 격하해 부르는 명칭이다. '이씨조선' 혹은 '이조조선'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대한제국의 고종과 순종의 가족을 이르는 말로 1910년 8월 29일에 창설돼 1947년 5월 3일까지 유지됐다.

울산 남구에 사는 최모(62·여)씨는 "대마도가 일본보다 한국에 더 가깝다 보니 주변에서도 여행을 자주 간다. 조선을 비하하는 단어가 버젓이 있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며 "양국간 협의를 통해 조속히 수정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왕조'라는 단어가 조선을 비하한 것은 맞지만 덕혜옹주 기념비는 다르게 해석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1931년 처음 기념비가 세워질 당시 결혼을 축하하는 뜻으로 대마도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에 의해 건립됐다. 2001년 기념비가 복원될 때는 한국 고고미술사학계의 거목인 고(故) 정영호 박사가 주도했다. 그는 1977년부터 대마도를 정기적으로 방문, 대마도에서 세상을 떠난 최익현 순국비를 비롯해 왕인 박사, 조선통신사를 기리는 비석을 세우고 한국 관련 유적을 발굴했다.

한 대마도 여행가이드는 "정영호 박사는 비석을 다시 세울 당시 이씨라는 가문의 왕가와 소오 가문의 백작이 만난 것이라 설명했다. 가문과 가문이 만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면서 "이왕조라는 말이 조선을 비하한 것을 맞지만 덕혜옹주 기념비는 최초로 한국인이 만들었는데 스스로 비하했다고 보기 어렵다. 이런 점 등을 감안하면 비하했다고 확정하긴 힘든 부분이다"고 했다.

덕혜옹주 저자인 권비영 작가는 기념비 문제를 넘어 대한제국의 인식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권 작가는 "기념비 문구 수정 문제는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인 것은 맞다. 하지만 현재 일본과 위안부, 강제 징용 등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산적해 있는 상황이라 범시민적인 운동으로 발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념비뿐 아니라 대한제국과 관련, 일본이 왜곡해 바로잡아야 할 문제들이 산더미다. 하지만 대한제국과 고종 황제가 그저 '무기력한 나라, 무능한 군주'라는 일제 식민사학 관점이 남아 있는 게 걸림돌이다"며 "최근 학자들의 다양한 연구로 부정적인 인식은 많이 희석되고 있다. 덕혜옹주 기념비 등 역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인식 변화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창훈기자 usj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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