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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보지도 듣지도 못한 책 한권 소개하겠습니다. 이아(爾雅). 이아가 책이름입니다. 진나라 때 처음 편찬된 책입니다. 강희안이 양화소록(養花小錄)을 쓸 때 이 책을 참고 했습니다.
여기에 연(蓮)을 일러 "뿌리는 우(藕)이고, 밑동은 밀이고, 줄기는 가(茄)이고, 잎은 하이고, 꽃은 함담이고, 열매는 연(蓮)이고, 씨는 적(的)이고 씨의 한가운데가 의(薏)이며 꽃을 가리키는 함담은 꽃이 피기 전의 봉오리를 지칭하고 꽃이 피고 나면 부용(芙蓉), 부거라고 부른다"고 하였습니다.

어라 부위별로 이름을 얻었네. 연(蓮)은 왜 다른 꽃과 달리 이렇게 상세한 이름을 얻었을까요?
송나라 주돈이(周濂溪 1017~1073)는 그의 애련설에서 연(蓮)을 "내가 홀로 연꽃을 사랑하노니 더러운 진흙탕에서 자라지만 깨끗함을 유지하고, 맑은 물에 씻겼으나 요염하지 않고, 속은 비고 바깥은 곧으며 가지가 벌어지지 아니하고, 향기는 멀리 퍼져나갈수록 더욱 맑고,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으나 가까이 두고 즐길 수는 없다"하였습니다.

 

 

노랑어리연
수련
홍연
백연

그래서 주돈이는 연을 군자의 꽃이라 하였습니다. 연꽃과 군자라. 어울리나요. 군자가 성품과 학식이 고상하다면 연은 화품이 고결하고 신성하다는 뜻일까요? 군자나 연의 품격을 가히 속인이 논할 수는 있을까요? 아직 저는 멀리 퍼져나가는 맑은 연의 향기를 맡아보지 못했습니다. 달빛 속에 연의 고결한 모습을 보고 맑은 향기에 취한다면 저도 연을 사랑할 것 같습니다. 지금은 다만 경외의 대상이죠.

18세기 문인 김종후는 한 발 더 나갑니다. 연꽃이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공경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사랑과 공경은 다른가요? 사랑하면 공경할 수 있는 것인가요? 공경하면 사랑할 수 있는 것인가요? 사랑의 상위개념이 공경인가요?

왕휘지는 대나무를 높여 자네라는 뜻으로 차군(此君)이라 불렀고, 도연맹은 논에서 출렁거리는 물소리를 듣고 마음을 깨끗이 할 수 있어 스승으로 삼을 만하다 하였으며, 북송시대 서예가 미불은 높은 바위를 보고 존경심이 일어 절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예를 들면서 김종후는 연꽃을 공경의 대상으로 삼는다고 하였습니다. 선비들은 연꽃을 수양의 매개물로 삼았습니다. 누추하고 비천한 환경에서도 스스로를 고결하게 지켜야 함을 배우고자 연꽃을 심었습니다.

송나라 증조가 열 가지 꽃을 벗으로 삼고 그 중 연꽃을 깨끗한 벗 정우(淨友)로 칭하면서 태화루의 중수기를 쓴 서거정, 퇴계 이황 등 조선의 선비들은 너도 나도 정우당(淨友堂)을 짓고 연꽃과 벗하고자 하였습니다.

17세기 학자 유계는 김수증이 안동에 못을 파고 연꽃을 심은 다음 그 곁에 정우당을 세워 연꽃을 벗으로 삼은 것을 두고 "군자의 벗은 그 덕을 벗한다. 뜻을 같이 하는 이가 벗이요, 도를 함께 하는 이가 벗이다. 곧으면 벗하고 믿음직하면 벗하며, 자기보다 나으면 벗한다. 꽃 중에 한 가지 덕이라도 취할 만한 것이 있으면 그 향기를 맡고 그 맛과 냄새를 함께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람과 식물이 서로 통하여 사람이 식물이 되고 식물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최근 들어 전국의 많은 지자체에서 연을 심고 연꽃 축제를 열어 시민들에게 힐링의 공간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아마 힐링과 함께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도 널리 퍼지겠지요. 

울산도 회야강 생태습지에 연을 심어 시민들에게 일년에 한달간 문을 열고 있습니다. 태화강 대공원은 어떤가요? 왕희지의 벗 차군(此君)이 십리에 걸쳐 도열해 찾아오는 이들에게 음이온을 선물하며 청량감을 주고, 열녀강 주변엔 부용아씨와 자미화가 한여름의 더위를 식혀 줍니다. 여기 열녀강에 주돈이의 사랑, 증조의 벗 정우(蓮)를 들이는 것은 어떤가요? 차군(此君)과 자미화(배롱나무), 연과 부용. 한여름 울산 시민들에게 좋은 벗들이 너무 많이 생기는 것일까요?  태화초등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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