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詩선] 폐가에서
[시인의 詩선] 폐가에서
  • 울산신문
  • 승인 2018.08.28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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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가에서

김연동

고양이가 주인처럼 들락거리는 폐가에
웰빙 봄동이 널브러져 있다
입춘이 왔다고 봄이 따라오는 게 아니라
겨울이 다시 회생하고 있다
대문 위 처마에 앉아있던 새들이 공중부양하러 사라지고
수세미 넝쿨이 통째로 낙하한다
이맘때만 되면 도무지 알 수 없는 연중행사처럼
詩人의 손에 굳은살이 썩어가고
아침에 뿌리 향수가 저녁을 타고 부패한다
나름대로 형식취한 문패 위에 고양이가 우두커니 앉아
주인 행세를 한다

오늘도 난
돼지처럼 돼지고기만 먹는다
미쳐 못 가져온 내일을 찾아 술도 마신다
5월에 태어난 사람들은
빈집 마당에 앉아 술 마시는 걸 좋아한다

△김연동 시인: 경북 청송 출생, 영남대학교 국문과 졸업, 2009년 문학세계 신인상 수상, 울산 시 문학상 작가상 수상, 울산 시인협회 회원, 울산문인협회 회원, 대한시문학협회 회원, 저서 '고슴도치 시집가는 날'
 

박진한 시인
박진한 시인

요즈음 받은 시집 몇 권을 읽어보다 맛있는 시집 한 권 '고슴도치 시집가는 날'을 발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었다. 우연히 시인협회 출판 기념회에서 한자리에 앉았다 받은 시집이다. 시인과 난 서로를 잘 알지 못한다. 시인은 詩로 인사한다는 우스갯소리로 첫 시집에서 찾기 힘들 만큼 노련한 필력을 느껴 여기서 그 중 한 수를 소개해 보기로 한다.
시집 속엔 소개하고픈 것이 여러 편 있었다. 인생이야기 '대추', 떠나서 되살아난 사랑 이야기 '위험한 사랑' 등 많이 있지만, 오늘은 '폐가에서'를 읽어보기로 한다. 설명 같으나 설명이 아닌 경계의 선을 따라 흐르는 문장 하나하나엔 직유적 기법이 마치 기형도 시인을 연상케 하는 시풍과 모순의 아이러니 대칭 기법 폐가와 희망의 봄, 그리고 돋아나는 햇살 입춘과 겨울의 회생, 아침 향수가 저녁때 부패, 부양하는 새와 낙하하는 수세미 넝쿨, 떠나버린 주인과 새 주인이 같은 고양이, 이 모두가 파괴적 대칭의 창의적이며 또 가슴 깊숙이 파고드는 자신의 초월적 표현 '돼지처럼 돼지고기만 먹는다'라며 감성이 몸속 짜릿해 오는 전율의 한 잔 술로 시인만이 느끼는 허무적 낭만을 풀어놓고 있다. 폐가는 폐가가 아니고 빈집도 아닌, 반만 그려 접어 찍어서 대칭을 만든 한 장의 컬러 데칼코마니 나비를 그렸다. 허무한 美가 여기 있네요. 
 박진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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