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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한세기를 넘은 지난 1910년 국권을 강탈당한 치욕의 날이다. 바로 경술국치일이다. 지난 1910년 8월 29일은 일제가 대한제국의 통치권을 졸렬한 간신무리를 동원해 강탈하고 한일병합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날이다. 이날은 1910년 경술년에 일어난 국가적 치욕이라는 의미에서 경술국치(庚戌國恥)라고 부른다. 수많은 북방민족의 침공 및 왜구의 침략에도 불구하고 국권을 지켜온 우리나라가 역사상 처음으로 국권을 상실하여 일제강점기라는 아픈 역사를 갖게 된 날이다. 1910년 8월 22일, 대한제국의 내각 총리대신 이완용과 제3대 한국 통감인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형식적인 회의를 거쳐 조약을 통과시켰으며 8월 29일 조약이 공포돼 대한제국은 국권을 상실하게 되었다.

1905년 을사조약 이후 실질적 통치권을 잃었던 대한제국은 일제에 강제 편입, 일제강점기가 시작됐고 일본은 우리민족의 재산을 약탈하고 정신적 탄압을 일삼았다. 그 시절 동안 박상진  장군 등 수많은 독립투사들에 대한 고문과 학살을 자행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윈스턴 처칠의 말처럼 8월 29일, 경술국치일은 우리 민족이 잊지 말고 꼭 기억해야 하는 날이다. 울산에서도 오늘 광복회 울산광역시지부가 울산보훈회관에서 경술국치일을 상기시키는 '제108주년 경술국치일 추념식 행사'를 개최한다. 행사를 마친 후에는 차갑게 식은 주먹밥을 먹으면서 국치일의 뼈아픔과 순국선열들의 독립의지를 되새긴다. 실제로 국권을 빼앗긴 후 독립을 염원한 선도들은 매년 8월 29일 찬 음식이나 흰죽, 금식으로 국권 회복의 의지를 다졌다. 광복회 울산지부 김성호 사무국장은 "나라를 잃은 제삿날로 표현할 수 있는 국치일에는 풍찬노숙하며 고군분투한 독립운동가들을 기리며 주먹밥 등 간소한 음식을 먹는 것도 의미가 있다"면서 "조기를 게양하고, 검은색 옷과 넥타이를 착용해 경건한 분위기의 추념행사를 가질 것이다"고 말했다.

경술국치는 과거 역사의 한 장면을 넘어 근대사의 제국주의가 낳은 비극으로 자리했다. 자존을 위해 쇄국의 말뚝을 박고 그 말뚝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정신의 배후에는 침략의 역사가 있었다. 대륙의 발톱과 섬나라의 혓바닥에 무수한 상처를 입은 아픔이 쇄국의 이름으로 철문을 닫아걸게 했지만 그 결과는 치욕이었다. 굳이 일제의 만행 운운하며 책임전가로 밤을 밝힐 일은 아니다. 문제는 나약한 황실을 누르고 나라를 제 집 물건인 냥 팔아먹은 이완용 일당의 만행과 이를 철저하게 합법화 시킨 일본 제국주의 실세들의 도덕성이다.

국권을 빼앗기고 외교를 유린당한 치욕의 책임은 우리가 스스로를 지키지 못한 것이 첫째다. 누굴 탓할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근대라는 이름으로 전함을 이끌고 아시아로 향한 제국들은 하나같이 약소국을 집어삼켰다. 러시아가 그랬고 미국이, 영국이 그랬다. 미개한 나라를 교화하고 자국의 영토로 삼는 일이 당시 열강들의 최고선이었고 목표를 위해서는 모든 수단과 방법은 정당했다. 영국은 인도를 식민지화 하며 학살은 물론 대포로 공개 처형하는 만행도 아무렇지 않게 자행했다. 문화재 약탈과 식민지 백성의 노예화는 기본이었고, 이를 거스르는 어떤 행위도 무자비한 폭압으로 식민 지배를 정당화 했다.

문제는 일본이 가한 식민화가 전체주의에 기초한 인간의 서열화에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누구보다 객관화한 미국의 정치평론가 그레고리 헨더슨의 지적처럼 일본의 한국 식민통치는 '식민 전체주의'였다. 미 군정청에서 7년간 한국 정치를 직간접 체험한 그는 일본의 식민 통치는 서구 열강이 인도, 아프리카, 동남아시아에 행한 식민통치에서 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가혹한 것이었다고 진술했다. 일제의 조선 식민화는 그야말로 물리적 억압을 넘어, 언어와 역사의 소멸은 물론, 창씨개명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민족 말살 그 자체를 시도했다. 일본이 민족적으로 우월하기에 미개한 조선인을 자국민화하기 위해서는 이 같은 모든 만행이 정당하다는 논리였다. 인류사를 통해 수많은 법이 만들어졌고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지만 부끄러움을 법으로 제어하진 못했다. 부끄러움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기본이다. 다시 경술국치일을 맞은 오늘 우리는 그들에게 부끄러움을 잊지 않도록 당당해져야 한다.

지난 2010년으로 기억한다. 당시 한일강제병합 100주년을 맞아 경술국치 당시 일제에 의한 국권 피탈의 치욕을 되새기고 미래를 조망하는 갖가지 행사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 국치일은 국민들의 가슴에 상처로 남기 전에 잊혀 진 날로 망각되고 있다.

망국의 역사, 침탈의 역사는 되새기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다시는 그런 치욕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지금 학생들에게 역사는 배우기 어려운 과목을 넘어 대학시험과 무관한 과목쯤으로 치부되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 기성세대의 책임이다. 우리가 역사속에서 무엇을 얻고, 잃었는지에 대한 자각이 없다면 미래도 없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바른 역사 교육을 통해 올바른 국가관과 미래관을 가지도록 해야 할 책무가 우리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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