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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문재인 대통령이 단행한 개각 가운데 가장 눈에 띠는 두장면은 교육부총리와 문화재청장이다. 국회에서 교육관련 상임위 활동을 한 것이 교육경력의 전부인 유은혜 교육부총리 내정자나 언론에서 문화전문 기자로 활동한 경력이 전부인 정재숙 신임 문화재청장의 발탁은 놀라운 결정이다. 유은혜 부총리 문제는 여러 이야기가 나오지만 청문 절차가 남았으니 그의 교육철학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울산시민들에게 교육부장관도 중요하지만 문화재청장의 면면은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청와대는 브리핑을 통해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30여 년간 문화전문기자로 활동해온 언론인으로, 오랜 취재활동을 통해 쌓은 전문성과 경험을 토대로 문화재의 체계적인 발굴과 보존, 관리뿐만 아니라 국민의 문화유산 향유기회 제고 등 '문화가 숨 쉬는 대한민국'을 구현해 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인사배경을 설명했다.

신임 문화재청장은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 미술사학을 공부했다. 50대 후반의 비교적 젊은 세대다. 그가 문화전문기자로 30여년을 언론에 몸담았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다. 일부에서는 문화재청장으로서의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이야기하고 현직 기자의 청장 발탁은 과한 결정이라는 비판도 있다. 지난 시절 9명의 문화재청장들을 보면 거의 대부분이 교수출신이거나 문화계 인사였고 간혹 행정관료도 있었다. 상당수가 문화나 문화재관련 전문가들이 청장을 지냈지만 미안하게도 문화재청은 우리 문화계의 또 다른 적폐로 지목되는 곳 중의 하나다. 그런 문화재청에 현직 기자가 청장으로 임명된 것은 어쩌면 조직의 새로운 변화를 위해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문제는 신임 청장의 안목이다.

문화재청장이 바뀔 때마다 필자는 신임청장에게 활자로 수없이 당부해 왔다. 간혹 현장에서 얼굴 맞대고 당부의 말을 한적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지면을 통해서였다. 지난 10여년 동안 울산을 찾은 문화재청장은 수없이 많다. 신임청장의 순례지역 1순위가 반구대암각화일 정도가 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반구대암각화 보존 문제는 10년 전부터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다. 현직 기자 출신인 정재숙 신임 문화재청장에게도 같은 말을 반복해야 한다. 반구대암각화를 이미 다녀간 적인 있는 신임청장에게 다시 한 번 당부한다. 이번에 반구대로 향하는 길에는 청장이 아니라 기자의 시각으로 지난 10년간의 논쟁을 제대로 정리해 보고 내려와 주길 바란다.

정 신임 청장은 가장 최근에 반구대암각화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관련해 인터뷰 기사를 쓴 적이 있다. 세계유산 평가와 감시 전문가이면서 유네스코 문화유산 프로젝트 자문위원으로 일하는 알프레도 콘티씨와 가진 인터뷰였다. 그 기사를 통해 정 청장은 반구대암각화의 세계유산 등재는 "한국인 모두의 지속적 관심과 책임 의식이 관건"이라고 적었다. 콘티씨의 말을 인용한 것이지만 당시 정기자의 입장도 암묵적인 공감을 했을 것으로 확신한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콘티는 현재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부회장으로 '대곡천 암각화군'에 남다른 관심을 가진 사람이다.

콘티씨는 몇차례 반구대암각화 문제에 대해 국내언론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 때마다 그가 밝힌 반구대암각화 문제의 핵심은 어떻게 하면 암각화를 물에 잠기지 않도록 할 것인가에 있다. 바로 지속가능한 보존이었다. 정 신임 청장도 이 문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으로 믿는다.  
반구대암각화 보존문제는 얽히고 설킨 복잡한 문제다. 과거 지방정부에서 추진했던 생태제방안은 문화재청의 결정으로 부결됐다. 과거 정권의 눈치를 보느라 내키지 않는 생태보존안으로 시간만 끌었다. 어디 시간뿐인가. 막대한 사업비를 투입해 가면서 수차례 용역을 실시하고 언젠가는 괴물같은 인공물 설치를 추진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전국민을 상대로 쇼를 해왔다. 어떤 의도로 정부 예산까지 끌어들여 용역과 괴물같은 물막이를 설치하는 쇼를 벌였는지 문화재청만 모르고 다들 알고 있는 일이다.

울산시민들은 지난 10여년의 세월동안 반구대암각화 보존 문제와 함께 했다. 지역의 물문제와 문화재 보존이 충돌했을 때 문화재는 안중에 없는 무식한 시골사람들이라는 격한 비난도 들었다. "촌놈들이 물문제로 생떼를 쓴다"는 이야기부터 "변기용량을 줄이고 옥상마다 빗물저장탱크를 설치해 식수를 해결하라"는 역겨운 대안까지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취재한 기자였던 신임 청장은 잘 알고 있다고 믿는다. 식수와 문화재가 충돌하는 현장에서 울산시민들은 언제나 그 중심에 인류 최고의 고래그림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반구대암각화의 경우 암각화 자체의 보존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되고 해당 유산의 보존에 더욱 관심을 집중해야 하는 것이지만 문화재청은 이 본질에서 이미 한참 벗어나 있다. 마치 반구대암각화 보존 문제가 울산시민들의 무지와 지방정부의 적폐 때문에 지연되는 것처럼 호도해온 것부터 인정해야 한다. 이미 세계적인 암각화 연구자들은 "암각화 유적은 울산 것만이 아니라 전 국민의 것이다. 한국 정부는 암각화를 세계유산에 등재시키겠다고 하는데, 전 세계인과 유적에 대한 책임을 공유하겠다고 하면서 스스로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신임 문화재청장은 지난 10년간 반구대암각화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잘 알고 있다고 본다. 문제는 생각의 방향이다. 서울 시민들의 식수원인 북한강 수계 어디쯤에 인류 최고, 최초의 바위그림이 숨쉬고 있고, 그 그림을 위해 양질의 식수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가정하면 답은 나오기 마련이다. 10년 논란의 핵심은 여러가지 안들이 아니라 바로 지방, 시골, 촌에서 이 문제가 벌어지고 있다는 중앙정부 중심의 사고방식 때문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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