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나타난 도룡농
미술관에 나타난 도룡농
  • 울산신문
  • 승인 2018.09.03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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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미술관 중단에 따른 '전문가회의'에 참석차 기차타고 내려가다 문득 천성산 도룡농이 떠올랐다. 지금도 도룡농들은 안녕하시다니 그 주장 때문에 2조 5,000억의 손해는 온전히 국민들의 몫이 되었다. 그럼 이번 울산시립미술관 중단사태는 또 얼마나 많은 돈을 먹나하는데 생각이 미쳤다. 바로 재개한다 해도 시공사 선정을 다시 해야 하니 최소 3개월의 입찰공고기간이 필요하고, 사업이 중단되면서 회계연도 안에 집행하지 못한 국고 반납 분까지 고려하면 적어도 최소 30억은 될 것이다. 앉아서 30억을 날린 셈이다. 중요 미술작품 30~40점은 족히 소장할 수 있는 돈이다. 소위 '공론화'를 하는데 들어간 비용치고는 참 혹독한 대가다.

사실 공론화가 부족했다고 하지만 울산시립미술관처럼 오랜 기간 동안 수많은 토론과 회의, 협의를 거쳐 지금에 이른 국내에선 가장 긴 미술관 건립의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통이 부족했다며 공론화한다면 아마 울산시민 모두가 'OK'할 때까지 계속해야 할 것이다.

사실 미술관사업을 긴급하게 중단시키고 공론화과정에서 주로 토론 한 것은 1.레플리카 상설전시문제와 2.설계공모에서 당선된 건축 안에 대한 이의제기가 주였다. 물론 주차장이나 기타 생산적인 토론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이것은 미술관 건립사업과는 상관없이 별도사업으로 추진해야 할 사항이다. 특히 객사터에 필로피를 세워 미술관을 확장하려면 객사 복원을 안 한다는 결정이 먼저 있어야 한다. 또 미술관부지 후면 도서관 부지를 미술관 부대시설과 시민문화시설로 검토하는 일은 애초에 중앙정부와 협의가 안 된 일이다. 따라서 이 일을 미술관사업에 포함시켜 추진하려면 지금까지의 모든 일을 백지로 돌리고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부터 다시 시작해야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산시는 일반시민과 전문가들을 한데 모아 연 '전문가 회의'에서 이런 설명 없이 아무 것이나 토론(?)하도록 방관하는 이해할 수 없는 태도를 보였다.     

일단 건축문제를 보면 처음부터 이곳은 미술관 부지로 부적합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객사가 드러난 문화재보호구역이라 고도와 건폐율의 제한을 받는 소위 '땅의 쓸모'가 없었다. 하지만 중구시장상권을 살려야 한다는 주민들의 요구로 부지로 선정되었다. 그 결과 미술관 전체규모가 축소되었고 복합문화공간으로서 미술관기능을 갖추느라 실질적인 전시장, 수장고, 교육시설이 줄었다. 또한 개관 후 소장품이 늘어나면 증축이나 확장이 필수적인 미술관 성격상 이 부지는 적절하지 못했다. 게다가 향후 객사가 복원될지 아니면 유구를 지하에 두고 보존할지 결정되지 않아 건축설계는 객사의 복원과 현상유지라는 두 개의 경우의 수를 모두 충족시켜야 하는 난제를 안고 출발했다.

다음은 레플리카(Replica)문제다. 유명 미술작품의 레플리카를 가져다 상설전시관을 운영하자는 일부 시민들의 의견은 중단에 한몫을 했다. 레플리카란 어떤 말로 포장해도, 아무리 잘 만들어도 그것은 '복제품' 또는 '모조품'에 불과한 예술적 가치가 하나도 없는 '물건'에 불과하다. 세상어디에도 모조품을 전시하며 미술관(Art Museum)이란 명칭을 붙이는 곳은 없다. 물론 필요에 따라 제작될 때가 있지만 이는 장식용이거나 원작을 보존하기 위한 수단이거나 학생들이 수업과정에서 따라 그리는 경우로 제한적이다. 또 대개의 복제품은 원저자 즉 작가의 동의와 감독을 받아 제작되는 것이 원칙이다. 만약 허락받지 않은 경우는 불법이다. 아무리 잘 만든 짝퉁 명품가방도 진품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하물며 예술작품의 경우야 말해 무엇하랴. 왜 온 나라가 위작사건이 나면 난리법석을 떠는 지, 대작을 왜 문제라 하는지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물론 미술관에 꼭 진작만 전시하라는 법이라도 있느냐고 되물을 수 있겠지만 이건 법 이전의 상식의 문제다. 상식이 안 통할 때 법을 마련해 제제를 가하는 것 아닌가. 꼭 '짝퉁미술관'을 울산시민들이 만들고 싶다면 할 말이 없지만.

그럼에도 궁금한 것은 지금까지 온갖 법적 행정적 절차를 거쳐 9년여를 진행 해 온 일이 시장지시 한마디로 중단될 수 있는 것 일까. 왕조시대나 군사독재시대도 아닌데 도대체 그 지시 또는 명령은 어느 법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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