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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 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백석: 본명 기행(夔行). 평안북도 정주(定州)에서 출생. 오산중학과 일본 도쿄 아오야마학원 졸업. 조선일보사 출판부에 근무했으며, 1936년 시집 '사슴'을 간행해 문단에 데뷔.
 

박성규 시인
박성규 시인

돈이란 것이 무엇일까? 세상은 모두 돈 때문에 이구동성으로 소란하다. 최소한의 필요경비만 가지고 여생을 보내려 하는데도 뜻하지 않는 일을 겪을 때마다 곤혹을 치르는 요즘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아보는 날이 많아지지만 돈 없이 살다 갈 수는 없을까?
근대 단편 소설 중에 계용묵의 '백치 아다다'가 있다. 이 작품은 영화로 노래로 더 알려져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작품 속에서 아다다(본명은 확실이)는 돈과 땅이 불행을 가져온다고 생각하게 됨으로써 스스로 책임질 수 없는 선천적인 원인으로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데에 비극의 심각성이 있다.
그렇지만 백석의 연인 나타샤! 그는 평생 모은 전 재산인 1,000억 원대 전통요정 대원각을 법정 스님에게 시주해 길상사로 만든 여인 김영한(金英韓). 백석은 그녀를 자야(子夜)라고 불렀고 이들이 만난 것은 1930년대, 백석은 시 쓰는 영어선생님, 자야는 춤추고 노래하는 권번 기생이었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던 그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한 채 백석은 북한에서, 자야는 남한에서 그렇게 살아가다 끝내 생을 마감했고 훗날 한 기자가 자야 김영한에게 "1,000억 원이나 되는 재산을 내놓고도 후회되시지는 않나요?" 하고 물으니 "1,000억이 그 사람 시 한 줄만 못해. 다시 태어나면 나도 시 쓸 거야" 했다고 전해 들었는데 새삼 가슴 저미는 저 시 한편을 읽는 지금 내내 돈에 대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돈 없어도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저 하늘나라로 언젠가는 나도 가게 되겠지만 돈이란 것 때문에 벌어지는 이 세상의 슬픔은 어디서 달래야만 하는가. 번듯한 시나 한줄 쓰고 가야겠다.
 박성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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