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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김감우

초록이여
너 이제 할 말 다 했는가

뒷짐 지고 바라보던 바람
헛기침소리 내며 서서히
발자국 떼어 놓는데

초록이여
너 이제 준비 되었는가

그 옷 갈아입기 전에
수취불명으로 반환된 편지

품속에서 꺼내
다시 긴 사연 전할붉은 잉크 준비 되었는가
정오 무렵
뜨거웠던 빛 따라
물들어 가며 사위어갈
각오 되었는가.

△김감우- 열린시학 시부분 신인상, 울산문학 작품상 수상.
 

한영채 시인
한영채 시인

9월이 왔다. 아침은 쌀쌀해져 오고 활짝 열었던 저녁 창문은 이제 닫기로 한다. 지난 날 그 뜨거웠던 여름을 귀뚜라미가 힘겹게 밀어 내고 있다. 입추 지난 새벽부터 귀뚜라미는 가을이 온다고 하나 둘 고백을 한다. 이제 계절의 중심인양 풀벌레들의 합창소리에 못내 고개 숙인 더위를 떠나보내고 있는 것이다. 마당에 꽃무릇이 아직 소식이 없다. 구월 초순이면 언제나 제 자리에 올라온 기다림이었는데, 마당을 붉게 물들여 마지막 정열을 보태기도 했는데, 유난히 더웠던 지난 여름 탓이라 믿고 싶다. 초록이여 그동안 세상에 던져진 말들, 할 말 다 했던가, 바람에 흔들리기도 하고 맑고 고운날도 있었을 터, 유난히 더워 힘들었냐고, 힘이 들었다고 보듬고 위로하며 서로의 가치를 다독이며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가, 서서히 헛기침 소리를 내는 단풍나무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너와 내가 참고 견딘 지난여름은 그늘이 위대했노라고….

구월 초순 백두산을 다녀왔다. 천지 가는 길, 미니버스를 타고 초록 짙은 우거진 숲으로 들어서자 서늘한 기운이 벌써 가을이 왔음을 안다. 이파리에 앉은 햇빛이 스멀스멀 빛을 잃는다. 이파리가 파리하다. 구절초 개미취 쑥부쟁이 산국이 한창이다. 마가목, 자작나무, 버드나무 잎은 몸을 흔들며 벌써 빛이 바래가고 있다. 천지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 올라가는 수많은 계단, 천지에서 시작된 졸졸 내려오는 맑은 물소리, 고도가 높을수록 이파리의 힘겨움을 알 수가 있다. 산 너머 저 멀리 보이는 설국의 세계, 곧 가을의 중심이 다가 올 거라 예감한 초록은 이미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울산에서 활동하는 김감우 시인은 초록에게 할 말을 다 했는지 떠날 준비는 됐는지 안부를 묻는다. 옷을 갈아입기 전에 붉은 편지를 주고받을 생각을 한다. 수취인이 없어도 좋다. 붉은 잉크로 긴 편지를 써 보자, 성찰의 계절로 바람이 분다. 이제 가을 속으로 떠나기로 한다.  한영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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