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처용, 춤추는 벽사진경
사라진 처용, 춤추는 벽사진경
  • 울산신문
  • 승인 2018.10.07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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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이사 겸 국장

역신같은 태풍 '콩레이' 때문에 처용문화제가 연기됐다. 문제는 반세기를 넘은 울산의 대표 축제인 처용문화제가 태풍에 연기됐다는 사실조차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우짜다가 이렇게 쪼그라들었는지 화들짝 놀라고 싶지만 별로 놀랄 일도 아니다. 처용이라는 이름으로 지역 대표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좌충우돌 하다 보니 축제의 정체성이 흔들린 결과다. 누굴 탓하겠냐만 가만히 있으려니 이제 처용이 무당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가관이다. 처용문화제에 앞서 학술심포지엄을 몇 차례 해 왔지만 그때마다 깜짝 놀란다. 학자들이야 원형의 사료를 바탕으로 오만가지 추론과 가설을 만들어내겠지만 이러다간 정말 설화가 전설로 굳어버릴지 모른다는 소름까지 돋는다. 

주장의 실체는 이렇다. 얼마전 학술제에서 처용이 신라 헌강왕대 울산지역 정치 지도자 역할을 했던 무당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임재해 안동대 명예교수의 일갈이다. 임 교수는 '처용설화의 재인식과 처용춤의 문화자산 가치'를 주제로 이야기를 풀었다. 신라 헌강왕의 울산 개운포 행차에서 동해용을 만난 것과 처용이 아내의 불륜을 보고 가무를 하며 물러나는 사건이 골자다. 그는 삼국유사에 서술된 헌강왕이 개운포에 행차할 당시 '서울로부터 바닷가에 이르기까지 집과 담이 이어져 있고 초가는 하나도 없었으며 풍악과 노래가 길에서 끊이질 않고 비바람은 순조로웠다'는 태평성대 담론에 주목했다. 그는 이를 통해 정치적 담론의 경우 누가 어떤 상황에서 진술한 것인가에 따라 기록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전제를 깔고 "왕이 주도하는 태평성대 담론일수록 왕권의 부패와 정치적 비리를 은폐한다. 왕의 무능과 혼란스런 나라상황을 가리기 위한 담론"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주장은 흥미롭다. 헌강왕의 개운포 행차 때 구름과 안개가 길을 막은 것이 동해용을 섬기는 무당들의 '제의적 반란'이라고 부풀렸다. 무당들이 지역민심을 반영해 왕권의 모순을 풍자한 굿이 설화에 등장하는 사건의 실체라는 추론으로 이야기를 끌고 갔다. 급기야 처용은 동해용왕을 섬기는 세습무의 아들 7명 중 하나이며 지역의 세습무는 무당이자 지역정치의 지도자 구실을 한다고 대못을 쳤다. 또다른 발표자는 처용이 장애를 가진 꼽추였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수년전의 일이다. 지역마다 스토리텔링이 붐을 이룰 때 울산도 그 바람따라 여러 가지 이야기 책들이 발간됐다. 그 대표적인 부끄러운 출판물이 '울주 오디세이'라는 이름으로 펴낸 책자였다. 이 책의 집필자는 스스로 TE 로렌스의 '지혜의 일곱기둥'을 차용해 '일곱개의 보물을 찾아 떠난 소년'을 테마로 울주 7봉을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집필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책을 여는 순간 처음 기대와는 달리 짜증이 치밀었다. 공통점이라고는 '일곱개'라는 글자 뿐인데 생뚱맞게 지혜의 일곱기둥을 차용한다는 발상은 유치하기 짝이 없다. 문제는 수준 이하의 집필자가 일곱기둥을 차용 하든말든 그야 자신의 천박한 영혼을 드러내는 것에 불과하지만 그 오점이 고스란히 울주의 역사 문화로 돌아 온다는 사실이다.

관광에서 스토리텔링은 노른자위 역할을 톡톡히 한다. 세계인들은 로마의 명물인 스페인 계단을 거닐며 영화 '로마의 휴일'의 오드리 헵번을 떠올리고, 일본 니가타현 에치고의 유자와 온천을 거닐며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을 떠올린다. 스토리텔링은 21세기 관광산업의 핵심이 됐다. 그 뒤로 여러 가지 기획이 여러 곳에서 있었다. 북구는 '강동 사랑길'로 이야기의 불을 지폈고, 동구는 '대왕암 솔바람길'과 '어풍대', 울산시는 '울산 어울길'을 펴냈다. 남구는 고래이야기를 다룬 '장생포 이야기'를 냈다. 해당 지역과는 관련이 있는지 확실하지 않거나 생뚱맞은 것까지 사실인듯 자리를 차지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로 재포장 되고 있다. 부끄럽지만 그런저런 출판물들이 울산의 이야기로 제목을 달고 울산은 물론 전국의 여러 도서관에서 나뒹굴고 있다.

울산은 그렇게 만만한 도시가 아니다. 처용이 곱추가 됐다가 무당으로 돌변하고 급기야 우상숭배의 또다른 상징으로 배척의 대상까지 될만큼 아무나 툭 건드릴 문화자산을 가진 도시는 결코 아니다. 울산은 북방과 남방으로 떠돌든 해양문화와 북방문화가 절묘하게 만나 하나의 문화로 꽃 피운 땅이다. 어디 이 뿐인가. 한반도 첫 국제무역항이자 철기문화의 발원지다. 그만큼 풍부한 문화자산을 갖고 있다. 무궁무진한 스토리텔링을 만들 수 있는 원천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세계적인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과 처용이 이를 웅변하지만  후손들은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으니 설익은 이야기나 날조된 설들이 제 것인 양 떠돌아다닌다. 

처용의 핵심은 춤이라는 행동이다. 그 행동의 기저에 고대인의 삶의 철학이 혈관을 따라 흐르고 있다. 벽사진경의 오랜 정신문화와 함께 연결하면 가능한 정월보름 가장 깨끗하고 순백의 달이 차오를 때 처용은 춤을 춘다. 동서남북, 그리고 중앙에 터를 잡고 하늘과 땅 바람과 하나 되는 춤사위를 풀어 헤친다. 온 세상 사람들이 처용의 춤사위에 어깨를 덩실댄다. 개운포 바닷가에서 시작된 천년의 춤사위는 관용과 포용이다. 용의 아들이 '龍'을 버리고 '容'을 택한 이유는 변화의 코드를 읽을 줄 아는 포용의 힘이자 여유의 자세다. 포용의 힘이 여유와 만나 펼치는 춤사위는 우주와 천지를 하나로 연결한다. 그 연결의 고리가 수용에 있다는 사실을 처용은 이미 천 년 전에 읽고 있었다.

흔히 우리 문화사에서 탈의 등장을 조선조 양반사회의 붕괴 이후로 이야기 한다. 남사당과 탈춤, 마당놀이를 한국 민중문화로 읽는 사람들은 판소리를 양반 문화의 전유물로 구분한다. 그들의 주장을 옮기면 우리네 서민, 즉 백성들은 양반네가 대청마루에서 소리꾼을 불러 판소리와 춤사위를 격식 있게 향유하는 현장을 담장 너머에서 귀동냥했다. 이 같은 격식의 문화코드는 구중궁궐로 들어가 한껏 치장하고 뽐을 내 궁중음악의 분을 바르고 비단과 장식으로 '인테리어'를 마친 뒤 왕족과 귀족 앞에 새로운 양식으로 선보였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이미 천 년 전 울산 개운포 갯가에서 동해 용왕의 아들이 하늘과 통하는 춤을 췄고, 그 춤사위의 여유와 포용을 탈바가지로 형상화해 신라 사람들과 고려 사람들이 두둥실 어깨춤으로 세월을 거슬렀다. 

출발 자체가 포용과 관용의 정신을 밑그림으로 깔고 있기에 처용무는 민중보다 궁중의 의례무로 자리했고 흥보다 장엄함이 어깨선을 타고 발끝까지 전율하는 신비로 자리했다. 그 신비로운 전율의 형상화가 처용의 모습으로 이어졌다. 이것을 다시 민중으로 돌려주는 것이 처용문화제다. 처용은 우리 선조가 만든 정신의 실존물이다. 그 실존의 형상화 과정에서 천년 세월의 변화의 코드가 박혀 있고 세월의 무게를 덧칠했다. 모르긴 해도 처용이 아내의 불륜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불륜의 현장을 살육의 피비린내로 바꿔버렸다면 피 냄새가 사라진 순간 처용도 사라졌다. 처용이 목격한 불륜이 다리가 네 개인 욕정이든 이방의 다양한 문화이든 치료법을 알 수 없는 질병이든 그 상징의 원형은 극복의 대상이다.

신라인들이 지향했던 세계관은 나와 우리를 넘어 다른 것에 대한 수용에 있었고 그 수용의 뿌리가 포용과 어울림을 흡입해 처용이라는 나무로 드러난 셈이다. 놀랍게도 천년 전 처용을 통해 드러낸 다양성의 수용이 오늘의 세계화와 맞물려 있다. 그래서 울산의 처용문화제는 엄청난 문화자산이다. 문제는 그 엄청난 문화자산을 제대로 알지 못한채 설에 설을 더하고 격식에 난잡함을 얹어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게 만들어 버린 오늘에 있다. 처용문화제를 알리는 깃발이 그래서 올해는 유난히 애처롭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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