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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들의 낚시

함영옥

그물만 짜고 있었다
여름 내내 단단한 근육을
실로 풀어낸다
바람도 못 지날 그물에
달빛이 촘촘히 걸렸다

한쪽 발 가만히 걸쳐두고
미세한 공기까지도 알아채는
손맛은 점점 성숙해져 가고
찌르르 풀벌레소리 자욱할 때
순식간에 찌를 올려야 한다

이슬 한 방울에도 흔들리는 거미줄
가짜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밥인지 독인지 직감으로 느껴야지
사는 것보다 살아내야 함으로
늘 씨줄로 엮어 놓아야 한다
모든 순간을 낚아 올리는 강태공
한 생애 저처럼 세월을 낚는 것이다

바람이 거미줄을 당겼다 놓으면
가을밤은 깊어지는데

△함영옥 시인: 경북 봉화, 2014년 울산문학 신인상, 울산 공단문학회 회원, 울산문인협회 회원, 시나브로 동인, 2018 '내 깊은 오란비는' 출간.
 

박진한 시인
박진한 시인

밤마다 찾아와 내 영혼을 일깨우는 시어들, 이제 두근거리며 홀씨로 날려 보내, 먼 고비사막 풀꽃이라도 피우는 건 바람에게 맡겨두겠습니다.
더위 지독한 날들도 바람에 쓰러지고 가을이 간들거릴 때 '내 깊은 오란비는'라는 시집 한 권이 출간되었다. 순정미에 속하는 조화성과 순수하고 완결되게 구성된 시집에서 오늘은 박수와 더불어 비장미에 가까운 한 편을 골라 소개합니다.
그냥 읽으면 동작과 상태 동사뿐인 것 같으나 뼈 없는 거미에게 깊은 세월을 낚아채는 기다림 미학은 거미의 뼈를 찾아낸 것 같은 느낌을 준다. 詩를 읽는 것은 독서라 하지 않는다. 그냥 '시를 감상한다'라고들 한다. 시의 시작은 노래이었기에 눈으로 보면서도 노래를 듣는 것처럼 감성에 젖어 들고 인간의 마음속에서 회오리가 되어 나온다. 울림은 사람마다 다르기에 이것만큼 감성 소비가 잘되는 것은 드물다. 가끔은 소비자들에게 詩를 들려주면서 구매 유혹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시인은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있는 허무를 "영치기 영차" 하며 기를 회전시킨다. 이 기운은 어떠한 반성이나 한숨보다 앞서는 미래의 것으로 자신에게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 그 과정에서 시를 쓰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과정 같지만 결과물이다.
실천, 상태, 좌절 속에서 기쁜 소식 같은 시상의 발상과 다짐으로 자신의 기준점을 만드는 것처럼 이 시를 두세 번 읽다 보면 가슴으로 온다. 시는 자신인 것처럼 썼지만 시인은 詩 속에 있고, 독자는 詩 밖에 있기 때문에 같은 현실은 아니지만, 요즈음같이 복잡 난해한 시대적 환경으로 볼 때 독자의 현실과 더 많은 공감이 있을 수 있다. 가을이 왜 깊어간다고 하는지, 시 속에서 가을 속으로 한번 빠져 보실까요.
 박진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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