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 2016년 미국 대선 결과는 뜻밖이었다. 장사꾼으로 보이던 그의 승리 비결은 단순했다. 양당체제가 확립된 미국은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자가 각각 절반 정도 된다. 이럴 때 특정 지역이나 계층을 집중적으로 공략해 몰표를 얻으면 승세는 한쪽으로 기울어진다. 트럼프는 제조업 쇠퇴로 저소득층으로 몰락한 백인 남성 노동자들을 공략해 지지를 얻음으로써 이겼다. 

미국 중간선거가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좌충우돌 '이단아' 트럼프가 속한 공화당이 이기는 것이 한국에 유리할까 불리할까. 

트럼프는 멀쩡하던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을 개정하게 했다. 반면 북한 비핵화의 돌파구를 열었다. 또 한편으로는 주한미군 주둔비용의 한국 분담액 증액을 요구 중이다. 한국은 지금 부담 중인 약 1조 원에 더해 수 천억 원을 더 내야 할지 모른다. 무기 구매 압력도 세다. 그가 한국에 안기는 고통과 기쁨은 그의 승리를 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게 한다. 

트럼프 승리의 충격은 아직 진행형이다. 미국은 중국산 수입품 2,500억 달러어치에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중국은 미국산 1,100억 달러어치에 보복 관세를 매겼다. 미국은 중국산 수입품 전체로 고율 관세를 확대할 거라는 말도 나온다. 미·중 무역 전쟁은 패권 경쟁 성격이 짙다. 1, 2위 국가의 경제 전쟁으로 세계는 불안하다. 자칫 국제 경기가 침체할 수 있어서다. 세계 경제는 2008년 금융위기의 어두운 터널을 막 벗어났다. 한국의 수출 대상 1, 2위 국가인 중국과 미국의 통상 분쟁은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에 타격을 준다. 

한국은 근래 세계의 중심이 된 느낌이다. 최첨단 무기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북한 핵·미사일 실험에 이은 비핵화 협상은 한반도를 국제 뉴스의 '핫플레이스'로 만들었다. 한국이 국제정세를 주도하기 때문이라면 기쁘겠다. 불행히도 한반도는 정세를 주도하기는커녕 열강들 틈바구니에 낀 새우 신세다.

일본과 중국의 대결은 미·중 갈등과 함께 한국의 입지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경제 규모 2위를 중국에 내주고 위기를 느낀 일본은 미국과 동맹을 강화하기로 했다. 중국 견제는 미·일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지점이다. '미·일 vs 중국'의 구도는 점점 뚜렷해진다. 

2008년 금융위기 여파로 미국과 일본이 제로 혹은 마이너스 성장 하는 동안 중국은 2012년까지 8~10% 고성장하면서 어느새 미국과 어깨를 겨루는 주요 2국(G2)이 됐다. 미국은 기술과 1인당 소득 수준이 중국보다 월등히 높다. 그러나 워낙 인구가 많은 중국은 생산량이 점차 많아져 곧 국가 경제력이 미국을 앞설 전망이다. 미국보다 국민이 못살아도 국가 경제의 총합은 미국을 능가하게 된다. 

미국은 중국을 억제하기 위해 아시아에 군사력을 증강하는 아시아 회귀 전략을 썼으나 중국의 굴기를 막지 못했다.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막기엔 역부족인 게 확인된 셈이다. 혼자서 안 되자 미국은 우방국과 동맹을 맺어 중국에 대응하려 한다. 미국이 미·일에 한국을 더해 한미일 동맹을 구축하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제일 큰 무역 상대국인 중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한국은 여기에 가담하길 원치 않는다. 사드 배치 파동은 이런 맥락에서 생겼다. 

북핵 문제로 한반도 처지는 다시 분명해진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트럼프 사이를 오가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비핵화 협상판에 한 자락 걸치려는 일본과 러시아는 한반도 주변 4대 열강의 구도가 조선 말기나 지금이나 별로 변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달라진 것은 중국 경제력과 북한 핵 능력이다. 앞으로 중국 경제력은 더 커지고 북한 비핵화는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다. 미·중 통상 전쟁은 적당히 봉합되더라도 또 터질 것이다. 

한·중·일의 경제 발전으로 동북아는 미국, 유럽과 함께 세계 정치·경제의 3대 축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 도전하는 중국, 그 틈을 타 군사력을 행사하는 '보통국가'가 되려는 일본 사이에서 동북아는 협력이 아니라 배타적 국익을 실현하려는 각축장이 되고 있다. 미·중·일 사이에는 다양한 마찰과 갈등이 계속되고, 한국은 '미·일 vs 중국' 구도에서 편들기를 강요당하기도 할 것이다.

미·중·일 각축은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평화에 어떤 영향을 줄까. 미·중 패권 경쟁 와중에 한국 경제가 멍들고 한반도평화가 표류할지 모른다.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힘을 길러야 한다. 경제력이 군사력이자 정치력이다. 그게 쉽지 않으면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 정신이라도 바로 차려야 한다. 동북아 정세와 한반도 안보를 구조적으로 바꿀 수 있는 북한 비핵화 협상이 한창이다. 비핵화가 제대로 될까 우려하는 것은 옳다. 하지만 비핵화 협상에 소극적이어서는 안 된다. 비핵화 기회를 포착하는 전략적 안목도 가져야 한다. 우리끼리 편 갈라 싸우는 것은 그런 것과 거리가 멀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