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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1592년) 6월 1일 일기다.
"맑음, 사량 뒷바다에 진을 치고 거기서 밤을 지냈다."
'난중일기'는 건조하다. 의욕과 달리 읽어내는데 1년 가까이 걸렸다. 내용이 어렵지 않음에도 소설처럼 내리 읽어지지도 않는다. 전쟁터가 삶의 터였고, 전투가 일상인 무장의 삶에 대해 생각해 봤다. 이순신 장군은 누란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영웅이다. 하지만 일기엔 전장의 일상을 묵묵히 견뎌나가는 고독한 한 인간으로 더 다가온다. 무인답게 자잘한 감정을 드러내는 부분은 별로 없다.

모든 독서가 목적이 있다고 생각한다.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말이다. 고전을 읽는 목적은 무엇인가. 삶을 포획하는 경박함에서 벗어남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빠르게 가기 보다는 천천히 가기, 가까이 보기보다는 멀리보기와 같이 비유할 수 있다.

요즘 청년 실업률이 매우 높고 취업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그런데 대기업 입사 후 1년내 퇴사율이 28%란 보도도 있다. 퇴사 1순위는 '조직 문화와 업무 부적응(49.1%)'이라 한다. 혹독한 경쟁을 뚫은 사람이 적응에 실패한다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다. 후배들과 대화해보면 그 고충들이 적지 않다. 구조적 측면도 있지만, 일과 삶을 대하는 본인의 태도와 관련된 경우도 많다. 견뎌내기가 힘들다면 '난중일기'를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장담컨대 어느 순간 삶을 대하는 관점이 달라지고 어떤 난관이라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난중일기'는 임진년(1592년) 1월 1일 시작해서 전사 이틀 전인 무술년(1598년) 11월 17일 끝 난다. 그리고 온나라를 피폐하게 만든 길고 긴 전란은 끝이 난다. 일기라 하지만 사생활에 관한 것이 아니다. 기울어져가는 국운을 되돌려 세우는 처절한 기록이다. 전란을 수습하는 장수의 전투 수행 일지이다. 눈 감고 뜨는 일상이 곧 생사가 갈리는 전장이다. 그러나 일기는 거의 평온하고 잔잔하다.

일기의 대부분은, 공직자로서 빈틈없이 공무를 처리하는 모습, 늘 어머니 안부를 묻고 걱정하는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다하는 모습, 거의 매일 휘하 장수들과 활 쏘는 모습, 끊임없이 장병들과 만나고 소통한 일들을 기록한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지만, 사랑하는 막내 아들 면의 전사통지를 받고 장군은 목 놓아 통곡한다. 여느 아버지와 다를리 없다.

정유년(1597년) 10월 14일 일기다.
"하늘이 어찌 이다지도 인자하지 못하신고, 천지가 캄캄하고 해조차도 빛이 변했구나. 슬프다,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내가 지은 죄 때문에 화가 네 몸에 미친 것이냐. 하룻밤 지내기가 한 해를 지내는 것 같구나. 이날 밤 이경에 비가 내렸다"
이 때 아들 나이 20세였다고 한다. 그해엔 어머니도 돌아가시니 그 슬픔을 더한다. 그 외에도 백의종군에 담담히 임하는 모습, 고문의 후유증인가 식은땀을 흘리고 잠못 이루는 고통의 기록을 보면 가슴이 저려온다. 그리고 마지막 노량에서의 전투 중 사망.

생각하게 된다. 읽다 보면 장군의 삶에 다다를 것인가, 아니면 들여다보는 것에서 그칠 것인가. 행복과 불행을 쉽게 나누고 삶이 가벼워지는 세상이다. 나는 얼마나 잘 버티고 견뎌내는가. 사람들은 입만 열면 스트레스 받는다고 말한다. 스트레스 해소는 시장의 상품으로 등장한지 오래다. 앞으로 살아감에 행불(幸不)의 관점에서 좀 벗어나야겠다고 다짐한다. 내 삶에 나타난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대로 받아들이면서 살아야겠다.

장군의 삶을 이해하기는 힘들다. 일기를 읽을수록, 영웅의 모습보다는 아들의 모습, 평범한 아비로 더 와 닿는다. 장군의 삶은 행복했을까. 우문이다. 무장으로 늘 죽음을 목격하면서 살아내야 했던 삶이니…. 다만, 장군이 남긴 일기는 오늘 우리가 삶이란 일상에서 치르는 크고 작은 전쟁에서 승리하라는 진한 메시지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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