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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을 하지 않으면 자식이 죽을 것이야"

무속신앙을 맹신하는 동네이웃에게 접근해 무속인 행세를 하며 굿 비용 명목으로 수억원을 가로챈 40대 여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울산 남부경찰서는 무속인 행세를 하며 지인 3명으로부터 7억원 상당을 가로챈 혐의(사기)로 김모(46·여)씨를 구속했다고 15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동네에서 마트를 운영하는 A씨가 평소 무속인들을 맹신하다는 것을 알고 이를 이용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접근했다.

A씨를 포함해 동네이웃 몇몇과 친분을 쌓은 김씨는 자신이 신내림을 받아 수시로 작두를 타는 무속인이라고 속였다. 거기다 A씨 등에게 조상굿을 하지 않으면 가족이 죽거나 재앙이 닥친다고 겁을 주면서 자신을 통해 굿을 할 것을 제안했다. 김씨의 말에 속은 A씨 등 3명은 1년 6개월간 81회에 걸쳐 7억원 상당의 돈과 금괴를 김씨에게 굿 비용 명목으로 갖다 바쳤다.

경찰은 김씨가 한 차례 굿 비용으로 적게는 300∼500만원, 많게는 7,000만원까지 받아 챙긴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김씨는 돈만 받아 챙기고 굿은 단 한 차례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들이 굿을 벌이는 것을 직접 보고 싶다고 할 때면 "아직 때가 아니다. 때가 아닐 때 굿판에 오게 되면 부정이 탄다"고 겁을 줬다. 피해자들이 혹시나 가족에게 말할 것을 대비해 "함구하지 않을 시 가족이 죽을 것"이라고 으름장도 놨다.

범인은 사기 행각이 피해자들의 가족에게 들키거나 수사기관에 적발됐을 때를 대비해 마치 자신이 빌려줬던 돈을 정당하게 받은 것처럼 보이도록 피해자들에게 차용증까지 작성하게 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게다가 김씨는 이 차용증에 대한 대여금 반환소송을 제기하는 사기까지 시도하려고 했다고 경찰을 설명했다. 이 같은 범행은 A씨가 자신이 속았다는 낌새를 알아채고 경찰에 김씨를 고소하면서 드러났다.

경찰은 수개월간의 금융거래계좌 추적수사 끝에 피해금액을 특정하고 김씨를 구속했다. 김씨는 자신이 10년 전 실제 신내림을 받은 무속인이라며 범죄 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의 경우 범인이 실제 굿을 하지 않고 무속인을 사칭한 사례지만, 과거 판례를 볼 때 실제 활동하는 무속인이 과도한 굿을 강요한 경우에는 범죄 성립이 어려워 주의가 필요하다. 실제로 지난해 8월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2부는 통상적인 범위를 벗어난 횟수의 굿판을 벌여 5억원 상당을 챙긴 A씨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경찰 관계자는 "굿을 하지 않으면 가족이 죽는다는 등 극단적인 해악을 고지하며 굿을 강요하는 경우 사기임에 유념해야 한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조홍래기자 usj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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