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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울산시민들이 문화의식이 부족한 비문화인으로 공격을 당했다. 반구대암각화 때문이었다. 공영방송 KBS가 천상의 컬렉션을 통해 미학적 차원에서 암각화를 조명했다. 미학을 전공한 진중권 교수가 큐레이터처럼 반구대암각화를 소개했다. 정교한 그림에 과학까지 더한 인류의 보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문제는 반구대암각화를 소개하는 말미에 있었다. 너무나 소중한 보물인 반구대암각화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멘트부터였다. 진 교수는 1965년 사연댐이 완공된 이후부터 반구대암각화가 물에 잠기고 깎이면서 그 모습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다양한 동물의 그림 등 300여 점 가운데 단 20점만 남아 있다고 했다. 보존의 걸림돌이 울산시민의 식수 문제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한 출연진은 포르투갈 코아계곡 암각화를 이야기하며 정부가 과감하게 '댐 건설 중단'을 결정했다는 사실을 처음 밝혀진 것처럼 시청자들에게 알렸다. 그러자 진 교수는 한 국가의 수준은 문화의식에 달려 있다는 멘트로 울산시민의 문화수준을 제단했다.

다 맞는 말이다. 시중에 떠도는 기준이나 일반화된 이야기를 근거로 했을 경우 반구대암각화는 거의 소멸되고 있고 훼손 정도도 엄청나 식별이 불가능한 상태다. 물 때문에 인류 문화유산을 침식하게 만드는 울산시민들이야 말로 천박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일반화의 오류이자 문화 포퓰리즘이다. 진중권 식 간접화법이 울산시민을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은 모든 사람이 눈치챌 정도는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 보면 울산시민들은 참 어처구니 없게도 또 봉변을 당한 셈이다. 변기 용량을 줄여서라도 물을 아껴라는 어느 학자의 말도 참았는데 더 못참을 말이 있겠냐만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모두가 천박한 인간으로 낙인찍힐지도 모를 일이다.

불과 한 해 전의 일이다. 문화재청이 반구대 암각화 보존 방안으로 '사연댐 수문 설치'를 권고하자 울산시가 크게 반발하며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시 문화재청은  '반구대 암각화 보존 대책으로 사연댐 수문 설치안이 최선'이라는 권고를 내놓았다. 사연댐의 수위를 52m로 낮추고, 수문을 따로 설치해 사연댐 상류에 있는 반구대 암각화의 침수를 막겠다는 것이 문화재청 권고안의 핵심 내용이다.

울산시는 이에 대해 "수위를 낮추고 수문을 설치하면 홍수 때 수위를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암각화 침수 일수는 줄일 수 있지만 울산시민들의 식수난이 가중된다는 점에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반복되는 보존방안의 지리한 공방전이다. 천상의 컬렉션을 보면서 감성정치가 떠올랐다. 어떤 사안이든 감성적인 접근법으로 다가가면 완전히 다른 이슈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류 문화의 시원을 바꿔놓은 기록물, 활자 없는 고대원시인들의 문화적 전승 수단으로서의 암각화, 미학자들도 놀란 암각화의 기법과 세련된 회화성 등등 이런 설명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면 울산시민들은 문화수준 제로의 미개한 시민이 된다.

반구대암각화가 한민족의 이동경로를 암시하며 고대 인류의 문화적 이동 루트를 증거하는 보물이라는 점은 아주 오래전부터 울산시민들이 공부했던 내용이다. 공영방송이 반구대암각화를 제대로 다루기 전부터 울산에서는 반구대암각화에 대한 학습이 활발했다. 그 논의는 학계와 언론이 주도했고 수많은 결과물과 자료들이 나왔다. 암각화박물관은 이와 관련한 학술대회나 심포지엄, 세미나를 지금도 열고 있고, 울산의 유치원생들부터 현장학습으로 이런 이야기를 듣고 보고 자라고 있다. 진중권 교수나 출연진들은 놀랄 일일지 몰라도 울산시민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이야기라는 말이다.

그런데 감성적 접근법으로 반구대암각화를 전국민에게 소개하니 이야기가 달라진다. 울산 시민들은 암각화의 가치를 모르는 무지몽매한 문화 원시인이 되고 세계적인 문화 유산을 지켜내지 못하고 스무점 만의 그림을 남긴 문화유산 파괴자가 되고 말았다. 마지막 멘트는 더 감성적이다. 무엇이 더 중한지를 고민해야 한단다. 고민하고 머리카락을 쥐어짜고 또 쥐어짰는데도 고민하지 않은 사람들이 돼 버렸다.

흥분은 그만하고 팩트 체크부터 해보자. 방송에 소개된 반구대암각화 편에서 출연자는 암각화를 300여점으로 이야기 하고 훼손돼 남은 그림이 20여점이라고 했다. 사실이 아니다. 지난해 반구대암각화에 새겨진 그림 46점이 추가로 발견됐다. 울산대 반구대암각화유적보존연구소는 반구대암각화에 종전 실측조사에서 나타난 기존 307점(2013년 울산암각화박물관)보다 46점이 늘어난 총 353점의 그림이 남아 있다고 밝혔다. 

울산대 연구소 측은  5년 간 수십 차례 현장 조사를 거쳐 46점을 추가로 확인했다. 조사 결과와 정밀 실측도면을 담은 '국보 285호 울산 반구대암각화'를 발간했다. 그림은 동물 202점(고래 57점 포함), 도구 21점, 인물 16점, 형체가 불명확한 그림 114점이며 최소 5차례에 걸쳐 만들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침수로 훼손을 추측할 수는 있지만 훼손이 침수 때문이라는 결정적 증거는 없다. 7,000년 세월을 견딘 퇴적암이기에 완전한 형태의 그림을 바라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욕심이다. 

다음은 식수문제다. 방송에서는 울산시민의 식수 때문에 반구대암각화가 보존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으로 이야기 됐다. 사실이 아니다. 울산의 경우 하루 40만㎥ 이상의 식수가 필요하다. 사연댐은 울산시민들의 식수댐이다. 침수가 문제가 되고 수위를 낮춰서라도 반구대암각화를 물밖으로 건져 올려야 한다는 여론에 수년 전부터 울산시는 사연댐 수위를 52m 이하로 조정해 왔다. 수위를 낮추면 당연히 식수가 모자라게 된다. 모자라는 식수는 낙동강에서 돈을 주고 사서 공급했고 가뭄이 심한 상당기간은 식수 전량을 낙동강 물에 의존했다. 한 해 식수 구입 예산이 많을 때는 160억 원 이상이나 됐다.

사연댐은 울산이 공업센터로 지정된 이후 울산공단에 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댐이다. 1965년 준공됐다. 사연댐 수위는 만수위인 60m(해발 기준)일 때 2,500만t을 담을 수 있다. 45m 이하 수위인 사수 549만t을 빼면 유효 저수량은 1,951만t이다. 문화재청은 10여 년 전부터 자연 방류형 댐인 사연댐에 수문을 설치해 수위를 조절하고 반구대암각화가 더는 침수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울산시 입장은 다르다. 문화재청 주장대로 사연댐 수위를 52m로 제한하면 유효 저수율의 34.2%인 668만t밖에 사용할 수 없다. 댐이 아니라 대형 저수지로 전락하고 가뭄으로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식수댐의 역할을 할 수없게 된다. 식수 때문에 보존이 안되는 것이 아니라 식수의 해결 없이 보존책을 이야기 하니 답이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사연댐에 수문을 설치하고 지금처럼 식수는 낙동강 물을 사먹는다면 어떨까. 사실 확인을 해보면 지금 상태에서 수문 설치는 불가능하다. 사연댐은 방류형 댐이 아니라 저수형 댐이다. 물을 가둬 수로를 통해 취수장에 보내는 방식이다. 사연댐 바로 위에 있는 대곡댐에서도 관로를 통해 사연댐에 물을 공급하고 있다. 두 댐의 물이 천상정수장으로 와서 울산시민들의 가정으로 공급 된다. 수문설치는 사연댐 여수로에 수문을 설치해 암각화가 물에 잠기지 않게 하는 조치다. 용역 결과 현재 상태에서 수문을 설치하면 댐이 붕괴할 위험이 있다고 한다. 차라리 댐을 허물고 다시 건설하거나 만약에 공학적으로 가능하다면 댐 옆에 별도의 공사로 수문을 따로 설치하는 것이 방법이라는 결과가 나와 있다. 이 모든 결정권은 수자원공사의 상부기관인 국토부가 가지고 있다. 댐을 새로 짓는 방안이나 추가 공사를 하는 부분에는 엄청난 비용이 든다. 그 비용을 감수하고 공사를 하겠다면 가능한 일이다. 

울산시민들이 지금도 맑은물을 기꺼이 양보하고 낙동강 물을 돈주고 사먹고 있다. 암각화보존을 위해 당분간 맑은 물을 포기 하고 2급수 이하인 낙동강 물을 먹으라고 해도 비용부분이 해결된다면 설득이 가능한 일이다.

문제는 그런 전후 사정 없이 울산을 문화의식 없는 동네이거나 울산시민들이 무지몽매한 사람이라는 여론몰이는 참기 어렵다. 울산은 동네 북이 아니다. 인류 문화의 보고를 가진 자긍심 충만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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