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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천(南川) 물소리

김성춘

달이 코스모스 꽃잎에 착륙한 밤
남천 다리 아래
웅얼웅얼 가고 있는 시냇물 소리
돌부리에 부대끼며 정처 없는 저 남천 물
부대끼며 가는 것
저 물소리만은 아니다
새벽도 한참 지나서
귀뚜리의 시린 무르팍도 지나서
내일 새벽까지 더 가야만 하는 저 남천 물소리
정처 없이 가게 내버려두자 내버려두자
빈 채로 가는 저 달
홀로 가는 남천 물소리
텅 빈 맨발들, 이쁘다

△ 김성춘 : 1974년 '심상'으로 등단. 시집 '방어진 시편' '흐르는 섬' '섬·비망록' '물소리천사'외 다수. 동리문학상등 다수 수상. 현재 계간 문예지 '동리목월' 편집장.

 

박성규 시인
박성규 시인

얼마 전 김성춘 선생님을 만나 뵙게 되었다. 선생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1978년 말 울산으로 넘어 갔을 때부터다. 시에 푹 빠져들 무렵이라 직장생활을 하면서 문학 동아리를 통해 꿈을 키우고자 했을 때 등장했던 분이 바로 김성춘 선생님이신데 선생님께서 퇴임 후 경주에 자리를 잡으시면서 내 고향 남천에 대해 귀한 작품을 열어 놓으셨으니 이것 또한 인연이 아니겠는가.


남천은 반월성 앞을 거쳐 오릉 북쪽의 국당마을을 끼고 건천(마른내)과 합류되어 서천(기린내)으로 흐르는 형산강 상류의 한 줄기지만, 국당마을이 나의 안태고향이다 보니 어린 시절의 나는 남천을 떠나서는 상상할 수도 없다. 남천은 모래내(沙川) 몰개내 모기내(蚊川)라 불리며, 신라팔괴의 하나인 문천도사(蚊川倒沙)란 말이 생겨났으며, 나의 작품 속에서도 가끔 소재로 인용하고 있는 곳이다.  그렇게 자랐던 내가 경주를 떠나 울산에 머문 곳이 방어진 부근이었다. 선생님께서 울기등대의 방어진 연수원에 근무하실 때 동아리 모임으로 뵌 것이 제일 가까운 곳이었지만 문학 지망생으로서는 감히 근접도 할 수 없는 위치의 선생님을 뵐 때는 늘 벌벌 떨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랬던 내가 바다를 이해하지 못하고 선생님과의 관계는 차츰 소원해졌고 근자에 만나 뵙게 된 것이 근 30년이란 시간이 흘렀으니 얼마나 긴 시간동안 죄를 짓고 살았던 것일까. 사실 90년대에 접어들어서 십 수 년간 일주일에 두서너 번은 방어진에서 정자까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태풍이 몰아쳐도 오가거나, 경주를 다녀갈 적마다 바다를 이해하기 위해 몸부림 친 적도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지만 올해 콩레이 태풍 영향으로 바다가 보고 싶을 때 달려갔던 지름길이 유실되고는 가보진 못했어도 바다라고만 하면 떠올랐던 선생님의 조우에 대해 올해는 다른 어떤 일 보다는 행복한 만남이 되어서 기뻤다.


울산 생활을 관두고 다시 고향이라고 경주로 돌아와서 국당마을 보다는 남천 상류 쪽에 터를 잡고 여생을 보내려 하지만 내 고향 이야기를 울산 사람이 아닌 경주사람으로서 불러주신 저 노래가 깊어가는 가을밤에 나의 가슴을 둥둥 두들기고 있으니, 詩를 대하는 사람으로서는 이 보다 더 행복한 일이 있겠는가.  이 해가 저물기 전에 선생님과 한 잔의 술잔으로 남천의 물소리같이 긴 시간의 회포를 풀 수 있다면 더 없이 좋은 만남이었다고 고백하고 싶다. 그 옛날 '방어진 시편'보다 울산을 떠나온 경주의 이야기로 시작된 만남을 길이 간직하고 싶다.  박성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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