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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가는 먼 집

허수경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 단풍의 손바닥, 은행의 두 갈래 그리고 합침 저 개망초의 시름, 밟힌 풀의 흙으로 돌아감 당신……, 킥킥거리며 세월에 대해 혹은 사랑과 상처, 상처의 몸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기대 마음의 무덤에 나 벌초하러 진설 음식도 없이 맨 술 한 병 차고 병자처럼, 그러나 치병과 환후는 각각 따로인 것을 킥킥 당신 이쁜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는 참혹……, 그러나 킥킥 당신

△ 허수경 시인: 1964년 경남 진주에서 출생, 경상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87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한 후,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실천문학사, 1997), '혼자 가는 먼 집'(문학과지성사, 1992),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창작과비평사, 2001), 장편소설 '모래도시'(문학동네, 1996) 등의 저서가 있으며,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 1·2·3'(비룡소, 2000) 등을 번역했다. 현재 독일에서 고고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2001년에 제13회 동서문학상을 수상했다.
 

한영채 시인
한영채 시인

늘 봄날인양 멋쟁이라 불리던 가까운 사람이 슬퍼할 겨를도 없이 세상을 떠났다. 가을의 깊이만큼 문학계의 거목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있다. 최인훈 시인, '밤이 선생이다' 저자 황현산 평론가가 가시고 이어 오늘 신문 문화란에 한국 문학계 산증인 김윤식 문학평론가가 82세로 별세를 했고 시월 초엔 멀리 독일에서 활동한 허수경 시인은 위암 말기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 이달 3일 향년 54세로 타계했다.
가을초입 봄시 동인 모임에서 허수경 시인의 작품세계를 들어다 보았다. 혼자 가는 먼 집(문학과지성사)1992년에 스승은 병중이고 시절은 봄이라 사랑은 나를 회전시킬까 내가 사랑을 회전시킬 수 있을까 부디 사랑이 나를 회전시켰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25년 전에 미리 이제 떠나려한다. 혼자 가는 먼 집을 향하여 예견이나 한 듯 그녀는 떠났다. 떠난 시간을 생각하며 살아온 상처에게 킥킥... 허허로운 웃음 뒤에 울음을 차라리 아름다움이라 하자 보다 좋은 곳으로 영면을 향하여 기도한다.
당신은 떠났지만 당신의 영혼은 검은 씨앗으로 알알이 독자들의 가슴에 박혀 있습니다. 당신을 부릅니다. 단풍의 손바닥, 은행의 두 갈래 그리고 합침 저 개망초의 시름, 밟힌 풀의 흙으로 돌아간 당신... 킥킥이라고 한번만 웃어 주세요.
 한영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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