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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재일교포 2세 작가 유미리(柳美里)의 작품 『가족 시네마』를 처음 읽은 것은 일본 유학시절인 1997년으로,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예상인 아쿠타가와상(芥川賞)을 수상했기 때문이었다. 

유학시절 해마다 발표하는 수상작을 빠짐없이 읽곤 하는 습관으로 이 소설책을 사서 읽었다. 물론 젊은 재일교포 2세라는 작가의 이력도 내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게다가 이 소설이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해서 사인회가 열릴 예정이던 서점에 '신우익'이라는 이름으로 협박전화가 걸려와 사인회가 중지되었던 사건으로도 유명하다. 

그 당시 읽은 소감은 그렇게 어렵지 않은 쉽게 읽혀진 소설로 기억된다. 왜냐하면 나 역시 일본 현대소설을 전공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족 붕괴'니 '관계의 문제'이니 하는 것은 당연한 주제였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작가의 자서전적인 요소가 가미된 소설이라는 점에서는 묘한 진성정이 느껴져 오랫동안 기억된 작품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흔히 연구자들이 이 작품을 평가 할 때, '가족의 붕괴를 다룬 유미리 소설의 결정판'이라고 한다. 소설 속 설정은 뿔뿔이 흩어진 가족들이 다큐멘터리 식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20년 만에 한자리에 모이면서부터 이야기가 전개된다. 

소설 속 가족 구성원은 주인공인 장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과 남동생이 등장한다. 화자인 스물아홉 살 모토미는 안정된 직장에 다니며 애인도 있고,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여성이다. 그러나 20년 전 부모의 별거로 인해 가족에 대한 콤플렉스와 그들을 향한 증오로 가득 차 있다. 

경제관념이 없는 빠징코 지배인인 아버지는 경마와 도박에 빠져 결국에는 폭력까지 휘둘러 가족 붕괴의 1차적인 원인을 제공하고 만다. 어머니는 딸이 세 살이 되자 피아노 학원을 보내 피아노를 배우게 하고 프랑스 인형처럼 꾸며주지만, 행복한 가정의 이미지가 자신이 그린 것과 어긋나자 카바레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고, 그리곤 미련 없이 어머니역을 내던지고 다른 남자와 살림을 차렸다. 그리고 포르노 배우인 여동생, 테니스 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자폐증 증세가 있는 남동생이 등장한다.

20년 만에 만난 가족들을 대하는 아버지는 어떻게 해서든지 다시 관계를 회복하려고 한다. 그러나 가족 붕괴의 1차적인 원인을 제공한 아버지를 아무도 이해하고 받아주려고 하지 않는다. 화자인 '나'는 아버지나 어머니를 특별히 비난하지 않는다. '나'는 가족 붕괴의 원인을 추궁하기 보다는 가족 서로 간의 반감과 증오를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다.

'나'는 원예 관계의 기획 상품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회사의 직원으로 자신이 고안한 아이디어 상품에 사용될 화병을 디자인해 줄 조각가를 선택하고, 일을 부탁하기 위해 그의 집을 방문한다. 

이혼해서 혼자 사는 조각가에게 상실과 고독이라고 하는 공통점에 이끌려 그에게 빠져들게 된다. '나'는 용기를 내어 사귀고 있는 남자친구와 헤어질 결심을 하고 조각가의 아파트를 찾아가지만, 어느새 다른 여자가 와 있는 것을 발견한다. 

결국 '나'는 또 다시 혼자라고 하는 현실 앞에 무릎을 꿇지만, 자신의 고독과 상실감을 다른 대상을 통해 해소하려고 한 생각을 저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과 자신을 모습을 받아들여 혼자서 극복해 내려고 한다. 

아버지 역시 가족이 함께 살기만 하면 잃어버린 것을 되찾을 수 있다고 믿었지만, 그렇게 쉽게 치유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붕괴된 가족 속에서 더 깊어진 고독감을 맛보게 된다. 

이 소설이 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가족'이라고 하는 가장 따뜻한 단어 앞에서 무리하게 가족을 묶어두는 것이 아니라, 뼛속 깊이 새겨져 있는 증오와 가족에 대한 콤플렉스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소설 속에서 영화를 찍는다는 수법은 이 작품을 더욱 더 완성도 있는 작품으로 만들었으며, 그래서 소설 자체가 하나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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