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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국무총리가 뜬금없이 사연댐 수위조절에 지자체가 합의했다는 식으로 발표를 했다. 언론에서는 일제히 '지난 50여 년 동안 반복된 침수와 노출로 훼손이 심각한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보존하기 위해 인근 댐 수위를 낮추는 방안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합의했다'는 보도를 냈다. 사정은 이렇다. 이 총리는 지난 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지난달 18일 대구시장, 경북지사, 울산시장, 구미시장, 국무조정실장, 환경부 차관, 문화재청장 등과 함께 총리 공관에서 오찬을 함께 하며 관련 협의를 했다"는 것이 공식 멘트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은 이번 합의를 통해 우선 경북 구미와 대구·울산을 포함한 낙동강 수계 인근 지자체가 용역을 통해 물 문제를 통합 관리할 방안을 도출하기로 했고 울산시가 반구대 암각화 보존을 위해 사연댐 수위를 더 낮출 수 있도록 환경부와 인근 지자체가 나서 식수(食水) 문제 해결을 돕겠다는 해설도 달았다. 한 발 더 나이가 경북 청도군 운문댐 식수를 대구와 울산이 일정 비율로 공유하기로 했다는 주석까지 보탰다. 물론 향후 나올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지역 주민의 동의 여부가 변수라고 단서도 잊지 않았다.

윤순호 문화재청 문화재보존국장은 "반구대 암각화 문제는 물에 잠기지 않도록 댐 수위를 조절하는 게 가장 근본적인 방안인데, 관련 지자체의 협조 없이는 실행이 불가능했다"며 "댐 수위를 낮추면서 다른 곳에서 깨끗한 물을 공급받아 식수와 문화재 보존 문제를 모두 해결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다 맞는 이야기다. 문제는 대구와 구미, 청도군의 사정이다. 즉각 반발이 나왔다. 대구지역 언론들은 이 총리의 발표가 나오자 마자 "대구시민의 식수원인 운문댐 물을 울산과 공동 사용한다는 데 합의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지역민들의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매년 갈수기 때면 운문댐 저수율이 낮아져 대구시조차 운문댐 물 대신 낙동강 물로 수돗물을 대체하는 상황인데 울산에까지 퍼줄 만한 여력이 있느냐는 주장이다. 실제 지난해부터 올 초까지 이어진 장기 가뭄 탓에 운문댐 수위가 최저기록을 나타내자 대구시는 지난해 8월부터 올해 2월까지 운문댐 취수를 일시 중단했다. 대신 운문댐 수돗물을 받아 쓰던 동구와 수성구 일부 지역에는 낙동강 수돗물을 공급해왔다. 아울러 지난 2월 완공한 금호강 비상급수시설로부터 원수를 취수한 뒤 고산정수장에서 걸러 생산한 수돗물도 함께 공급하기도 했다.

대구시 관계자는 "지난 6월 말 들어 장마와 태풍 영향으로 운문댐 저수량이 늘면서 7월 25일부터 운문댐 수돗물 공급을 정상적으로 재개했지만 올 겨울과 내년 봄 가뭄이 이어질 경우 또다시 운문댐 취수가 불가능해질 수 있어 걱정"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총리가 밝힌 '청도 운문댐 물을 대구와 울산이 공유한다'고 합의했다는 내용에 대해 대구시는 물론 많은 지역민들이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울산시의 경우 침수로 인해 훼손이 심각해지고 있는 반구대 암각화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새 취수원 찾기가 과제다. 지난 1965년 식수와 공업용수 확보를 위해 건설한 사연댐으로 인해 태화강 지류인 대곡천 수위가 높아지면서 반구대 암각화가 침수돼 훼손 논란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총리의 합의 발언은 국무조정실 차원의 희망사항일 뿐이라는 이야기다.

문제는 이 총리와 국무조정실은 왜 지금에 와서 반구대암각화 보존 문제를 마치 합의했다는 식으로 발표했냐는 것이다. 반구대암각화 보존 문제가 울산시민의 식수 문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면서 섣부른 발표가 지자체간의 갈등만 키울 것이라는 사실은 왜 고려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국무조정실 차원의 이같은 합의는 과거에도 수차례 있었다. 용역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답이 나와 있는 상황에서 합의니 용역이니 이야기 하는 것은 탁상행정에 불과한 일이다. 

반구대암각화 보존 문제는 물문제와 연계된 예민한 사안이다. 그렇기 때문에 청도나  대구 구미는 물론 경북도와도 긴밀한 협력이 필요한 사안이다. 맑은 물 문제를 전제할 경우 그렇다는 이야기다.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은 낙동강 물을 식수로 사용하는 것은 울산시민들의 정서와 이해를 구해야 하는 또다른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그 만큼 반구대암각화 보존 문제는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런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쪽은 국무조정실 실무자들과 문화재청 실무자들이다. 총리나 자치단체장들은 선거로 당선되거나 임명직이기에 사안의 미묘한 부분까지 모를 가능성이 많다. 하지만 실무자들은 그간의 과정을 잘 알고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런데도 이 같은 일을 매번 반복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문제는 반구대암각화 보존을 성과주의나 과시용으로 포장하려는 의도에 있다. 자신의 임기중에 전체적인 합의를 이끌어 해묵은 문제를 해결해 냈다는 성과주의는 위험하다. 결국 그런 의도 때문에 지자체간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수 있나는 이야기다. 그래서 반구대암각화 보존 문제에 정치적 입김은 절대 개입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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