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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데없이 이승복 논란이 불거졌다. 노옥희 울산시 교육감이 울산 지역 12개 초등학교에 남아 있는 이승복 동상을 철거하도록 했다. 노 교육감은 전날 열린 간부회의에서 "지난주 초등학교를 방문해보니 이승복 동상이 있었다"며 "시대에 맞지도 않고 사실관계도 맞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빠른 시간 안에 없앴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교육감의 한마디에 동상을 가진 초등학교는 난감하게 됐다. 사실관계는 대법원 판결로 사실로 확인됐고 시대는 여전히 공산당이 싫다는데 동상은 철거하라니 눈치만 살피는 모양새다. 

이승복은 누구인가. 1959년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현 용평면) 도사리에서 3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난 이승복은 지난 1968년 울진삼척 무장공비 사건 때 어머니, 남동생, 여동생과 함께 북한 간첩에 의해 살해됐다. 대법원 확정판결로 인정한 사실이다.

1·21 사태 청와대 습격사건이 있던 1968년 10월 3차에 걸쳐 울진/삼척지구 해상으로 침투한(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북한의 무장간첩 중 잔당 5명이 추격을 피해 북으로 도주하다 12월 9일 강원도 평창군 노동리 계방산 중턱 이승복군의 초가집에 침입했다. 당시 기사에 따르면, 무장간첩들이 당시 속사국민학교 계방분교 2학년인 이승복(당시 10세)에게 '남조선(남한)이 좋으냐, 북조선(북한)이 좋으냐'고 질문하자 이승복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했고, 격분한 공비들은 대검으로 이승복의 입을 찢어 살해했다.

당시 많은 언론들이 이 사건을 취재했는데, 조선일보가 이승복군 가족 4명이 북한 무장군인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사건은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이승복 군의 발언이 발단이 됐다는 특종 보도를 하게 된다. 그 후 이승복은 반공의 상징이 되어, 효자 정재수 군과 함께 거의 모든 초등학교에 동상이 세워지고 도덕 교과서에도 실렸다. 1975년 10월에는 평창군 대관령 정상에 '이승복반공관'이 설립되었고 1982년에 이승복의 모교였던 속사초 계방분교 근처로 이전하면서 '이승복기념관'으로 바뀌어 성역화됐다.

시대가 변해 김대중 정부 들어 일부 좌파 단체에서 '이승복 기사 조작' '거짓 보도'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승복의 이야기는 교과서에서 사라지고, 전국 곳곳의 이승복 동상들이 철거됐다. 결국 진실은 대법원에서 가려졌다. 2006년 11월 대법원은 "이승복 기사는 조선일보 기자들이 현장을 취재해 작성한 사실 보도"라고 판결했다. '현장에 가지도 않고 꾸며 쓴 거짓 보도'라고 허위 사실을 유포한 김모씨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의 유죄가 확정됐다.

박정희 전두환 시대를 거치며 다소 과장된 스토리텔링은 있었다지만 사실관계는 여전히 팩트로 남아 있는 셈이다.아무튼 교육감의 지시니 전국적인 관심사가 돼버렸고 주머니에 넣을 수도 없는 동상이다보니 어쩌지 못하는 일선 학교장들의 입장만 이상하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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