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포도에 대한 기억
청포도에 대한 기억
  • 울산신문
  • 승인 2018.11.08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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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옥연 수필가

데크에는 떨어진 포도가 수북하다. 시들다 떨어진 송이들이 나뒹굴고 있다. 

어느 해보다 더 뜨거운 여름이라 포도나무도 볕을 견디지 못했다. 그악스러운 더위를 견딘 것이 용하다. 포도를 먹지 못한 아쉬움보다 빠른 기후 변화가 두렵다. 흐트러진 자연의 질서를 회복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서 걱정이다. 비로 쓸어 모아서 버린 포도가 밭 가운데 쌓였다. 좀 허탈했다. 묘목을 파는 농원에서 나무를 사다 심었던 나무라면 좀 덜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곡절도 있고 특별한 포도라서 마음이 더 시렸다.

몇 년 전 지인이 포도를 심은 화분을 들고 방문했다. 여러 단계를 거쳐 구한 포도나무 가지를 꺾꽂이한 것이다. 화분에서 잘 자라 준 것이 기특했다. 그 때는 밭을 구입하지 못해서 아파트 베란다에서도 두 해를 넘게 있었다. 밭이 생기자마자 가장 먼저 심은 것이 포도나무다. 밭에 옮겨 심어 자리를 잡아줬을 때는 살기나 할까 걱정이었다. 척박하기 이를 데 없는 데다 부드럽지도 않는 흙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도 한해를 잘 넘기더니 지난해에는 포도를 몇 송이 달았다. 날씨까지 도운 덕에 단맛이 일품이었다. 달달한 포도를 먹을 때마다 생각나는 포도나무가 있다.

내가 살던 작은 집은 마당이 좁았다. 좁은 마당에 담을 끼고 자라는 오래된 살구나무가 있었고, 텃밭에는 감나무도 한그루 있었다. 심지어 염소우리와 닭장까지 들여놓으니 작은 마당이라도 없는 게 없었다. 

그 집은 몇 번이나 집을 사고파는 과정을 거친 후 어머니가 마련한, 어머니와 둘이 살기에 적당한 집이었다. 방 두 칸에 부엌하나가 전부이고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었다. 

집 텃밭에는 채소나 푸성귀도 있었다. 여름이면 가지며, 도라지, 부추 등으로 밥상까지 풍성했다. 그중에서 내 호기심에 가장 자극을 준 것은 장독대에 있던 포도나무 한 그루였다. 전 집주인이 심었는지 오래 된 고목으로 해마다 여름이 되면 장독대를 탄 넝쿨에 포도가 제법 열렸다. 좁쌀같이 작았던 포도 알이 커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고역이었다. 하루에도 수차례 지켜봐도 잘 자라는 것 같지도 않은 것이 늘 입맛을 다시게 했다. 

어느새 제법 알맹이가 커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부터 학교에 갈 때면 몇 알씩 따서 가방 속에 넣어 가기도 했지만 어느 날 부터는 송이 째 따서 들고 나갔다. 친구들에게 나눠주거나, 어느 틈에 한 알 한 알씩 다 먹은 것 같다. 지금은 생각만 해도 입에 침이 고이는 그 시큼 떨떠름한 맛이 참 좋았다. 그때는 우리 집에 청포도 나무가 있다고 자랑을 했다. 풋 포도를 먹으면서 좋았다. 언젠가 그 집을 처분하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 오두막에서 따먹었던 포도나무도 잊혀져갔다. 

언제였을까? 어느 날 어머니께 그때 그 오두막집 포도나무가 청포도였는지 물었다. 어머니는 내가 늘 익기도 전에 따먹어서 그게 제대로 익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따먹지 못하게 말리지 그랬느냐 했더니, 말려도 눈앞에 두고 참지 못할 것이 뻔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포도가 매일 한 송이 씩 없어지는 것을 알면서도 말린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설사 그것이 청포도가 아니라도 나에게는 청포도였던 것이다. 단출하고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그 오두막이 그리운 것은 푸른 청포도가 아니었던 푸른 포도나무가 한 몫을 했다. 덜 익은 포도를 청포도인 줄로만 알았던, 나의 해프닝은 어른이 되어서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농막 데크 위로 포도가 주렁주렁 매달릴 때, 올해는 와인을 만들어 볼 생각이었다. 지난해 지인이 만들어준 수제 와인 맛이 제법 괜찮았다. 포도의 진한 단맛이 와인의 풍미를 더 높인 것으로 여겼다. 내가 너무 과한 욕심을 낸 것은 아닌가 싶다. 그늘을 만들어준 포도나무 아래 데크를 들여놓고 주렁주렁 매달린 포도를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알갱이가 유독 작아서 먹을 때는 한 알씩 따먹는 것이 아니라 한 송이 씩 입을 크게 벌리고 입 안 가득 넣어 먹어야 제 맛이다. 달콤한 물이 한 입 가득해서 먹고 나서도 입가에 남은 단맛도 가관이다. 

지인들을 볼 일이 걱정이다. 익지도 않은 포도가 매달린 것만 보고 자랑을 하고, 모든 이에게 다 따줄 것처럼 포도 딸 때 오라고 오두방정을 떨었으니 난감하다. 저장해서 두고두고 먹는 것 보다, 농사지은 것을 그때그때 나눠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설레발이 공수표로 날아갔다. 어쩌면 시큼한 청포도라도 사러 가야할지도 모르겠다. 여름이 떠나버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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