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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총리가 반구대암각화 보존에 앞장 서는 일은 이제 고착화된 국정업무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 김황식 총리부터 박근혜 대통령 시절 정홍원 총리까지 역대 총리는 반구대암각화에서 보존문제와 관련한 특별한 이벤트를 한번씩 하고 갔다. 특히 정홍원 총리 시절에는 카이네틱 댐이라는 이상한 괴물까지 만들기로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반구대암각화 문제는 본격적으로 정치가 개입하기 시작했다.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이 울산시민들을 모욕하는 발언을 했고 학자를 동원해 울산의 식수문제를 본격적으로 건드렸다. 사연댐에 수문을 설치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잊을만 하면 툭툭 튀어나왔다. 급기야 이낙연 국무총리는 사연댐 수위조절에 지자체가 합의했다는 발표도 했다. 

즉각 대구 경북의 반발이 있었고 여론은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해졌다. 벌써 몇 번째인가. 물 문제를 놓고 노력, 합의 추진 등등의 단어만 남발하다 없었던 일이 된 것은 10년이 넘은 이야기다. 이런 식의 이야기는 지자체가 합의한 것이 아니라 지자체장들의 긍정적인 노력을 합의로 발표하는 정치적 수사학 때문이다. 면전에 대고 반대하지 못하는 단체장들과 총리의 입만 쳐다보는 문화재청 사람들이 모여서 어떤 합의를 하는지는 너무나 뻔한 일이다. 이제 이런 식의 탁상공론은 중단되는 것이 맞다. 뾰족한 보존안이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합의했다'는 문장에 귀가 쫑긋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이낙연 총리는 '청도 운문댐 물을 대구와 울산이 공유한다'고 합의했다고 언론에 발표했다. 총리의 희망사항을 이야기 한 것이지만 발표는 공식적인 단체장들의 합의 수준이 돼버렸다. 이 부분은 엄청난 잘못이다. 이 총리가 합의한 것이 노력하기로 했다는 것인지 행동하기로 한 것인지부터 명확하게 해야 한다. 반구대암각화 보존 문제가 울산시민의 식수 문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아는 총리실에서 이런 식의 발표가 어떤 파장을 낳을 것인지를 몰랐을 리가 없다. 그냥 노력 정도라면 과거에도 수차례 합의가 있었다. 물관련 용역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답이 나와 있는 상황에서 합의니 용역이니 이야기 하는 것은 그냥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반구대암각화 보존을 총리의 치적이나 이 정부의 성과로 만들려는 의도라면 엄청난 착각이다. 송철호 시장도 반구대암각화 보존 문제를 두고 보다 냉철한 관점을 가져야 한다. 과거 박맹우 시장이나 김기현 시장이 반구대암각화 보존에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이유도 바로 국무총리실과 문화재청과의 지루한 탁상행정 때문이었다. 하나 더 보태자면 반구대암각화 보존의 본질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과오를 그대로 안고갔던 것도 결정적인 이유다. 자신의 임기 중에 합의를 이끌어 해묵은 문제를 해결해 냈다는 성과주의는 위험하다. 결국 그런 의도 때문에 지자체간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수 있다. 

울산이 반구대암각화에 목을 매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핵심은 '뿌리'다. 반구대암각화는 무엇보다 울산이 아니라 한반도에 인류가 이동해온 과정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주는  증거물이다. 대륙문화와 해양문화의 접점이자 두갈래 인류의 융합이 일어난 인류사의 획기적인 장소다. 그 생생한 인류의 이동경로가 반구대 바위에 새겨져 있다. 한민족 주류의 기원이 북방에 있다는 설은 가설의 단계를 넘어 인류학적으로나 문명사적으로 검증이 되는 과정에 있다. 오늘날 한반도를 중심으로 살고 있는 한민족은 혈통적으로 몽골로이드계 인종에 속한다. 몽골로이드계 인종이란 오늘날 인류의 직계조상으로 간주되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출현한 후, 지금으로부터 10만년~5만년전부터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로 학계에서는 추정한다. 최초의 원주지를 떠나 오늘날 바이칼호를 축으로 그 연안과 동부지역에 자리잡은 인종집단이 그들이다.

몽골로이드인들은 '따뜻한 남쪽, 풍요의 땅'을 찾아 해 뜨는 땅, 동쪽으로 이동했고 그 이동의 종착지로 강과 바다가 만나는 울산을 택했다. 그들은 울산에서 바위에 고래를 새기고 해가 떨어지는 시간 샤먼의 주술에 따라 다음날 아침, 동트는 바다에서 큰 고래 한 마리 사냥할 수 있기를 주문처럼 외웠다. 그 이야기를 보존하는데 지자체의 합의나 수문설치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물에 잠기지 않도록 무조건 물밖으로 꺼내놓은 뒤 다음 문제를 생각하는 것이 순서인데도 주변환경이 어떻고 학술적 가치가 어떻고 원형보존이 어떻고를 이야기 한다. 원형은 이미 사연댐 건설로 변해버렸다. 변해버린 원형을 두고 원형보존을 외칠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을 제대로 살려놓고 그 가치와 뿌리를 고증하고 세계인에 알리는 작업이 우선돼야 한다. 본질을 보지 못하고 허구헌날 탁상공론만 하면 결국 지금 우리 세대는 반구대암각화를 훼손한 장본인이 되고 만다. 이제 서로가 차분하게 이 문제가 왜 이렇게 복잡해 졌는지를 제대로 살펴봐야 한다.

지금 반구대암각화 보존 문제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반구대암각화 앞으로 흐르는 대곡천과 함께 주변 지형의 변화를 동반하는 문화재 형상변경 문제다. 이 문제는 사실 반구대암각화가 발견된 시점부터 돌아가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 문제를 위한 문제에 불과하다. 지난 1971년 겨울 반구대암각화가 발견됐을 때 이 일대는 이미 울산공업센터의 용수공급을 위한 사연댐 축조가 끝난 상태였다. 7,000년의 원형을 간직했던 대곡천이 사연댐의 축조로 지리적 자연적 생태적 변화를 겪고 난 이후였다. 대곡천의 유속이 달라졌고 암각화 주변의 풍광도 변했다. 무엇보다 이미 수년째 반구대암각화는 사연댐 수위와 비례해 자맥질을 반복해오던 시기였다. 문제는 반구대암각화를 세계문화유산에 신청하는 과정이었다. 지난 2009년 12월 문화재청은 반구대암각화를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으로 신청했다. 당시 문화재청은 대곡천 주변의 자연환경과 국보 제285호인 반구대암각화, 그리고 국보 제147호인 천전리 각석을 '천전리 암각화군'으로 묶어 문화유산이라는 어정쩡한 이름으로 등재를 신청했다. 다음해 잠정목록 신청이 받아들여져 반구대암각화는 암각화군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유산에 이름이 올랐고 이미 수년째 잠정목록으로 지정돼 있다.

암각화 가운데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사례를 보면 연해주의 사카치아랸, 이탈리아 발카모니카, 스웨덴 타눔, 아프리카 나미비아, 탄자니아 콘도, 아르헨티나 리오 핀투라스 등이다. 이들은 거의 대부분 암각화 자체로 세계유산이 됐다. 모두 나름대로 보존이 잘 된 암각화지만 훼손상태가 심각한 곳도 있다. 특히 관광지가 된 암각화는 비록 물에 잠기는 곳은 없지만 인위적인 탐조시설이 들어서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암석과 현대의 인공미를 연결한 곳이 대부분이다. 또 한가지, 이들 암각화에 나타난 그림들은 대부분 조악하다. 무엇보다 단순한 형상의 나열이나 상징화된 이미지의 반복이 이들 암각화의 전부라 할 수 있다. 물론 고래그림은 없다. 해상과 육상 동물이 함께 그려져 있고, 사냥술과 생활상이 세밀하게 묘사된 암각화는 반구대암각화가 유일하다. 그런데 말이다. 앞서 열거한 대부분의 암각화가 주변에 또 다른 암각화를 갖고 있고, 선사인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흔적을 남긴 점은 간과할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이런 사정을 살피지 않고 반구대를 암각화군으로 묶어 등재신청을 했다는 사실이다. 결국 그 패키지 상품이 보존해법에 결정적인 걸림돌이 돼 버렸다. 대곡천 주변의 자연환경과 반구대암각화, 천전리 각석을 세트로 묶은 세계유산은 반구대암각화를 자연유산과 연계한 유산으로 혼돈하게 만들어 원형보존이라는 이상한 논리가 주류를 이루는 우를 범했다. 이런 어리석은 발상은 반구대암각화 하나보다는 주변과 연계한 것들을 함께 묶어야 세계유산 등재가 쉬울 것이라는 학계와 문화재청의 엄청난 패착이 만든 결과였다. 한마디로 무지의 결과다. 반구대암각화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차고넘치는 세계 문화유산인데도 이를 모르고 어정쩡하게 자연유산과 혼재한 문화유산을 신청해 대곡천 일대의 원형보존이라는 이상한 족쇄를 반구대암각화에 채워버린 셈이다. 이제 그 오판을 인정하고 반구대암각화 자체를 보존하는데 집중하고 이를 빨리 세계 유산 목록에 올려놔야 한다. 물 문제든 항구적인 보존이든 모든 갈등보다 더 우선 되는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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