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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물

이우걸

가을에는 다 말라버린 우리네 가슴들도
생활을 눈감고 부는 바람에 흔들리며
누구나 안 보일 만치는 단풍물이 드는 갑더라.

소리로도 정이 드는 산개울 가에 내려
낮달 쉬엄쉬엄 말없이 흘러 보내는
우리 맘 젖은 물속엔 단풍물이 드는 갑더라.

빗질한 하늘을 이고 새로 맑은 뜰에 서보면
감처럼 감빛이 되고 사과처럼 사과로 익는
우리 맘 능수버들엔 단풍물이 드는 갑더라.

△이우걸 시인: 1973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맹인』 『나를 운반해온 시간의 발자국이여』 『주민등록증』 외 다수. 비평집 『현대시조의 쟁점』 『우수의 지평』 『젊은 시조문학 개성읽기』가 있음. <중앙시조대상〉 <가람시조문학상〉 <이영도시조문학상〉 외. 현재 시 전문지 《서정과현실》 발행인.
 

이서원 시인
이서원 시인

깊어가는 만추의 계절이다. 산과 들이 형형색색으로 '단풍물'이 들어가는 이 아름다움도 곧 겨울의 자리에 슬그머니 밀려나고 말테지. '우리네 가슴들도' 자꾸만 말라 가는 듯한 이 허허로움을 어쩌면 좋을지. 아등바등 살아내도 힘겨운 우리네 소시민들에게도 '누구나 안 보일 만치는' 스스로의 색을 입히며 그렇게 보내는 것이리라.
1년 중에도 유달리 11월은 겸허의 계절이다. 보이는 것 들리는 것 그 너머의 이목(耳目)을 뛰어넘어 안다는 것의 의미가 새롭게 느껴지고 체득되는 완숙의 계절이다. 얼마나 깊어지고 자신의 삶을 숭엄하게 받아들여야 할지 때로는 그 경계의 언저리에서 맴돌게 된다.
산 개울가의 물이 흘러가는 그 소리에도 정이 들어 낮달도 쉬엄쉬엄 건너가는 저 경이를 보면 젖었던 우리네 마음에도 물이 들어 동화되지 않을 이 있을까 싶다.
이토록 가을의 절정은 경이의 절경 앞에서 깨우침의 미학이 깃드는 것이다. 물이 든다는 것은 단순한 색상의 변화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의 자기 모습을 버리고 새롭게 거듭나는 의미다. 고정되었던 관점과 관념을 버리고, 편견과 입장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새로워지는 것이다. 
맑고 고운 뜰에 서서 감처럼 사과처럼 삶도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으로 다시금 바라볼 때 독자는 호강을 한다.
시가 생활이고 전부인 시인의 삶이 이 시 속에 다 있음을 본다. 오늘 아침 바쁜 여정에서 문득 바라본 하늘을 통해 가을이 왔음을 알고서야 단풍물이 드는 계절임을 자각했다. 하여, 주말 즈음엔 서둘러 산이라도 올랐겠지. 그리고 그 산에서 개울물을 보았을 것은 당연지사다. 한나절 낮달과 놀다 돌아온 집의 뜰에서 만나는 유실수를 통해  익어가는 인생의 참의미를 다시 느껴 보는 시인의 삶이 곧 시이고, 시가 곧 삶이렷다.  
 이서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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