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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의 앞 베란다는 누군가 야멸차게 싹둑 잘라낸 것 같이 아예 없었다. 안방 창문이 적나라하게 하늘에 노출된 채였다. 여름날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면 창 쪽으로 놓은 텔레비전에 비가 들이치므로 부리나케 창문을 닫아야 했다. 알루미늄 새시에 불투명 유리를 끼운 현관문은 방범이 허술해 보였다. 

거실을 사이에 두고 안방과 작은방이 나뉘고 밖으로 난 주방문을 열고 나가면 집 뒤쪽으론 좁다란 베란다였다. 그 끝에 연탄창고가 붙어 있었다. 연탄보일러 시설이 내장되지 않은 거실엔 겨울 내내 석유난로를 켜야 했다. 서른 몇 해 전 울산으로 이사와 들었던 아파트다. 아파트가 별로 없어 감지덕지하며 둥지를 틀었던 데다. 

욕실은 세탁기나 놓고 물을 받아쓰는 욕조만 있을 뿐 휑하니 서늘해서 샤워를 할 수 없었다. 여름에는 밖에서 뛰어놀고 땀을 흘리며 들어오는 아이들을 목욕시키기 위해 매일 주방에서 커다란 들통에 물을 데워 낑낑거리며 욕실로 옮겨야 했다. 

가장 심란하던 건 겨울 초입에 겨울철에 쓸 연탄을 들이는 일이었다. 연탄 넣는 날이면 현관문과 뒤 베란다로 통하는 주방문을 활짝 열어젖혀야 했다. 연탄 가게 사내는 연탄을 지고 신발을 신은 채로 거실을 지나 주방을 거쳐 연탄창고에 연탄을 쌓았다. 그럴 때면 바람이 때를 만난 듯 맞바람을 치며 온 집안에 연탄가루를 날렸다. 

사내가 딛고 다니는 바닥에 빈틈없이 신문지를 깔고 집안 곳곳을 신문지로 덮었다. 휘몰아치는 겨울바람을 타고 연탄가루는 날쌔고 재발랐다. 신문지로 꼼꼼하게 마무리를 했는데도 구석구석 찾아들어 새까맣게 자리를 잡았다. 

거기에다 가관인 것은 연탄을 다 넣을 때까지 연탄 사내의 투덜거림이 연탄가루와 뒤섞여 끝없이 날아다녔다. 연탄을 지고 4층까지 오르내리기 힘들고 귀찮다고 지청구가 늘어졌다. 조용히 할 일을 하고 있으면 수고하신다며 어련히 차와 간식을 내지 않을까. 뜨거운 커피를 끓여 내고 사내의 휴식시간에 때맞춰서 간식도 내놓길 사내는 은근하면서도 강하게 요구했다. 그럴 때면 그 집을 벗어나고 싶은 심정이 활활 타올랐다. 우리 집에선 연탄 사내의 횡포가 비교적 덜하다는데도 그랬다. 심지어 연탄을 넣다 말고 어디론가 사라져선 한참씩 안 오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그 집에서 5년을 살았다. 

마음에 드는 위치에 난방시설 잘 갖추어 번듯한 아파트를 짓는다는 소문을 듣고 달려가서 분양을 받았다. 칠 년 후에는 넓어진 평수만큼 행복이 확장이나 되는 듯 착각하며 더 넓은 아파트로 분양 받아 옮겼다. 

때때로, 삶에 함께 하는 시간을 뒤로 젖혀 쟁여둔 세월이 기웃이 일어서는 때가 있다. 멀리 밀려가서 묵은 시간들이어서 외려 어느 한때를 분명하게 확인시켜 주곤 한다. 뜬금없이 연탄들이는 날이면 온종일 괴롭기만 하던 그 집의 시절이 그리운 것이다.

난리를 치르듯 연탄을 들이고 김장까지 하고 나면 겨울채비가 다 된 안도감이 따스하게 스며왔다. 절임배추를 파는 데가 없던 그때는 밤잠을 설치며 집에서 배추를 절여 김장하는 일이 예삿일이 아니었다. 그 김장도 해서 갈무리하고 따뜻한 이불 속에 발을 넣고 아이들과 오순도순 밀감을 까먹노라면 입안 가득히 향기가 차오르며 유난히 맛있었다. 

되돌아보니 알몸뚱이로 견디는 것 같이 딱하게만 여겨지던 안방 창문이 소통의 통로 역할을 톡톡히 했다. 아파트 마당을 지나고 있으면 어느 집에선가 커피 마시러 오라고 손짓하던 것도 그 얄팍한 창문을 통해서였다. 김장거리 배추를 사서 들여올라치면 어느새 이웃들이 마당으로 난 창문으로 낌새를 알아채고 제 집의 칼을 들고 나와 일층 현관 앞에서 다듬어 집으로 옮겨 주었다. 나는 절이기만 하면 되었다. 다음날 오전엔 우리 집 김장하는 날을 자연스레 알게 된 이웃 주부 서넛이 제가끔 앞치마와 고무장갑을 챙겨들고 온다. 좋은 솜씨로 양념을 버무려서 둘러 앉아 김장을 척척 해준다. 그러는 동안 나는 무, 콩나물 넣은 소고깃국을 끓여 배추속대 버무린 것을 놓고 밥상을 차린다. 김장을 후딱 해치우고 뜨끈한 국에 갓 버무린 생김치를 얹어 밥을 먹고 과일을 깎아 차를 마시며 정답던 아파트다.  

베란다에까지 문을 달아 놓고 따뜻한 실내에서도 늘 생각나는 것이 있다. 방안의 우리를 필사적으로 보호하듯 달랑 매달린 연탄 아파트의 안방 창을 통해 전해져 오던 생생한 바람소리, 빗소리가 그립다. 

자연에서 태어난, 걸러지지 않은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며 비 내리는 소리가 얼마나 우리 정서를 웅숭깊게 하는지 그 창문 곁을 떠나고서야 알았다. 태풍 치는 밤이면 베란다가 생략되어 비탈에 선 나목처럼 매섭게 훑어가는 바람에 맞서 앙버티는 창문과 함께 몰려다니는 바람을 걱정했다. 창문을 흔드는 비바람소리에 괜스레 잠 못 이루고 남편과 촛불을 켜고 고추장에 마른 멸치를 찍어 맥주를 마시며 밤을 지켰다.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온밤을 새우곤 했다. 

집이 작고 얇은 그만큼 이웃과 친밀하며 인정이 더 많이 흘러오고 자연의 소리가 가까웠다. 이런 바람 부는 날에 얄따란 창이 안간 힘쓰듯 보호해 주는 방안에서 느끼던 보금자리가 더욱 소중하고 아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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