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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서민들의 내집마련을 돕기 위해 만든 지역주택조합 제도가 '합법적 사기'로 변질돼 피해자들의 폐지 요구가 들끓고 있다. 지주택조합은 저렴한 분양가와 절차가 간단한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그러나 전문지식 없는 서민들이 돈을 내고 사업을 진행해야 하다보니, 그 과정을 대행하는 업무대행사와 추진위원장(조합장) 등의 뱃속만 불리거나 사업이 지지부진하는 등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지역주택조합이 있는 울산은 사업지 36곳 중 15곳이 넘는 조합이 고소·소송에 시달리는 등 피해가 더 심각한 상황이다. 개정된 6·3주택법 역시 여전히 법적 빈틈이 많아 서울, 부산, 울산, 경남 등 지자체가 최근 국토부에 폐지를 건의했다. 폐지를 요구하는 국민청원도 잇따르고 있다. 지주택제도의 단계별 허점과 조합원 피해실상, 개선방안 등을 여러 차례 나눠 싣는다. 편집자

"믿을 데가 한 곳도 없었어요. 행정은 민간사업이니 알아서 하라죠, 조합 자문변호사란 사람은 업무대행사 고문 변호인이라며 탈퇴는 못 도와준다대요. 신탁사요? 농협계좌 보다 못 합디다."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인 남구 D조합추진위 한 조합원은 업무대행사가 창립총회 직후 두달 만에 조합원들이 낸 90여 억 원 중 87억 원을 다 탕진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로 신탁사와 업무대행사 간 계약구조를 꼽았다. 그는 "업무대행사는 조합원 모집때부터 신탁사와 단 둘이 계약을 맺는다. K신탁사는 사업계획이 당초 350여 세대에서 180여 세대로 대폭 변경됐지만, 아무 사실 확인없이 서류만 보고 조합원 분담금을 인출해 줬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업무대행사 관계자들이 서울에서 신탁사 직원만 내려온다고 하면 외제차에 각종 접대 등 '황제 대접'을 했다. 그 이유가 뭐겠냐"며 "3억여 원의 보증수수료까지 냈는데 조합원 동의도 없이 인출해 준다면 차라리 농협계좌가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K신탁사 관계자와의 통화에서도 이는 사실로 드러났다. K신탁사 관계자는 "통상 신탁사들은 서류상 모집 세대수의 50%만 모이면 사업비로 조합원 분담금을 인출해준다"며 "지주택 사업 구조상 사업계획은 언제든 변경될 수 있어 현재 사업계획상 맞으면 서류만 확인하고 인출해준다"고 말했다.

최근 국민청원에 제기된 충남아산신창 지역주택조합 경우에도 신탁사 문제가 거론됐다. 모집대행사 두 곳이 허위계약서를 작성해 조합원 모집수수료 65억여 원을 챙겨갔지만, 신탁사는 조합원 자격 등을 확인도 않고 계약금을 인출해줬다. 그러나 법원은 이 신탁사도 오히려 업무대행사에 속은 피해자라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 조합 관계자는 "신탁사는 시중 은행에 비해 비싼 수수료를 받고 자금관리이행 계약을 한다. 그러나 사실 확인도 없이 눈 감고 돈을 빼준 것 아니냐"며 불만을 드러냈다.

현행법상 신탁사의 자금운용과 관련해선 공개의무가 없기 때문에 제대로 된 절차대로 조합원 분담금이 업무대행사에 지급되고 있는지는 조합원들은 물론 행정당국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신탁사 자금운용에 대해 법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조합원 출자금을 투명하고 신뢰있게 관리하라고 보증수수료까지 내는 만큼 합당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주택조합사업의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 논문을 발표한 대구대 도시학과 김복득 씨는 "지주택 사업의 투명한 자금관리를 위해선 신탁사의 개입이 필요하며, 담당 업무 역시 단순 대리사무가 아닌 조합원 출자금을 전반적으로 관리하고 감독할 의무가 부여되도록 개선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조합 법률자문을 위해 선임한 변호인단도 조합원들을 두 번 울리고 있다. 조합원들에게 자문료를 받으면서 업무대행사의 각종 탈·위법 행위 조력자가 돼고 있단 것이다.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인 동구 M지역주택조합 한 조합원은 "조합 법률단인 변호사에게 탈퇴 과정을 의뢰했더니 대행사 고문변호인단이란 이유로 탈퇴는 도와줄 수 없다고 해 어이 없었다"며 "철저하게 조합원 입장에서 법률 자문단을 꾸려야 조합원들이 피해를 보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주영기자 uskj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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