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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수학능력시험이 뭐예요?" "수학능력시험이니 수학 시험 아닌가요?"
엉뚱한 중1 남학생의 질문이었다. 수학능력시험의 '수학'을 수학 과목으로 이해한 걸 보면 '아직은 어린 역시 중학생이구나' 싶었다.

수학능력은 말 그대로 지금까지 배운 학문을 테스트하고 고등사고력을 판별하는 시험이다. 수학능력시험을 치르고 대학에 입학할 학생들에게 있어서는 수학능력시험은 대학으로 가는 관문이자 일생일대에 거쳐야 할 시험인지도 모른다.

시험날 새벽부터 늘어선 응원열기 속에서도 수험생의 날카로운 긴장감이 여기저기에서 전해진다. 학부모들은 행여나 아이들을 응원하는 마음이 전해질까 시험을 치르는 교문 앞에서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신호를 기다릴 때 붙어 있는 플래카드의 '학생, 학부모님, 그리고 선생님' 그동안 정말 고생 하셨습니다'라는 문구가 이 시기 학생들과 교사들의 심정을 알기에 부쩍 마음에 와 닿는다.

예전에 고등학교에 근무하면서 고3반의 교과수업을 할 때 누구보다 열심히 아이들을 걱정하시며 지도하시던 고3 반 담임 선생님의 노고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곤 했다. 그 때는 몇 년 전이라 야간보충수업, 야간 자율학습이 반강제적으로 시행되던 때라 아무리 야자 감독을 순번으로 돌려도 쉽사리 반 아이들만 두고 먼저 퇴근하는 선생님들은 거의 없었다.

먼저 가면 자식을 놔두고 가는 부모의 마음처럼 이유 없이 미안해지고, 마치 교실에 두고 온 물건이 있는 것처럼 차마 발길이 안 떨어지는 것이었다. 반 아이들의 야자타임에 같이 있어주는 것이 참된 교사인 것 마냥 마음이 편해지기도 했던 그런 시절이기도 했다. 그때 같은 학교에서 고3 담임만 연속으로 5년 동안 맡으신 선생님이 계셨는데 그 분이 그렇게 고3 담임을 하시는 모습이 정말 존경스러웠다. 그 선생님은 집에 12시 전에 가본 적이 별로 없다고 하셨던 분으로 아직 경력이 짧던 나에게는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으로 그 잔상이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또 어떤 분은 자녀가 고3인데도, 자식의 시험장 근처에는 가보지도 못하고 자신이 맡은 반, 고3 아이들의 수능 응원을 위해 수능 시험장으로 향하시던 모습도 봤다. "반 아이들이 행여나 담임교사가 응원하러 오지 않으면 실망할까봐 새벽 일찍 나섰다"는 그 분의 멋쩍은 웃음에서 아이들을 향한 교사로서의 정성에 감동했다. 당신의 자녀가 고3인데, 자식의 한번 뿐인 고3 시험에 응원하러 가지도 못하고, 반 아이들을 위해 담임으로서 응원하러 가던 발걸음. 그 발걸음에서 정말 자신보다는 가르치는 아이들을 더 먼저 생각하는 모습이 보며 그런 분들이 진정 '참된 스승'이 아닐까 생각했다. 과연 나는 그런 일이 닥치면 어떻게 했을까?


어쩌다 교사에 대한 부정적인 글을 보면서 힘이 빠지는 것은 적어도 같은 교단에 근무하고 있는 눈에는 쉽게 보이지 않는 수많은 고등학교 선생님들의 노고를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입 수능일'은 학생과 학부모에게 정말 더없이 중요한 날이기도 하지만 매년 제자를 위해 헌신하는 교사에게도 1년을 함께 동고동락한 제자들이 사회인으로서 세상 앞에 오롯이 설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날기도 하다.

수능일만 되면 그 어느 때보다 갑자기 추워지는 날씨 탓에 수능일을 당겨서 시행했고 어느덧 수능일이 11월 중순이 된지도 여러 해 되었다. 그래도 수능 당일에 학생을 기다리는 학부모의 마음에는 자식에 대한 걱정으로 차가운 서리가 내릴지도 모른다. 올해는 어느 해 보다 따뜻한 수능일이었다.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의 마음도 그만큼 따뜻해졌을까. 몇 년간 긴 학업의 노력 끝에 얻은 영광의 결과와 대학 입학이란 또 다른 시작의 첫 걸음에 선 학생들에게 건투를 빈다. 새로운 시작의 터닝포인트, 그 멋진 발걸음에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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