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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이탈리아 현지시각) 타계한 베르톨루치 감독의 부음이 그의 오래된 영화를 소환했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사진)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리면서 마지막 황제로 이어지는 세기말적 작품들이 포털을 달아오르게 하고 있다. 반항과 부조리의 시대였던 1970년대를 그린 영화는 심의보류 파동을 겪고 끝내 개봉하지 못하다가 제작된 지 24년만인 지난 1996년 12월 21일 서울의 국도극장 등에서 개봉돼 중년 남녀들을 극장으로 몰리게 했다.

당시 수입사인 율가필름과 배급사인 DI영상은 'NO 컷, NO 비디오'라는 큰 활자 아래 무삭제를 강조하며 관객몰이에 나섰다. 실제로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가 개봉하자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문화적 충격 그 자체였다. 무삭제라는 타이틀로 유혹한 스크린에는 무삭제의 포장지처럼 뿌연 모자이크가 가려져 탱고와 브루스의 구별이 어렵게 됐고 '지성인 15만 관람'이라는 선전 문구는 먹물깨나 먹은 자는 반드시 보고 말아야 할 영화처럼 한 시대를 흔들고 갔다.

평론가들은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를 베르톨루치 감독의 처음이자 마지막 문제작이라 칭한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그저 한 사내의 욕망의 찌꺼기를 녹인 상상력의 산물일 뿐이라는 혹평도 즐비하다. 실제로 베르톨루치는 길거리에서 만난 낯선 여자를 강간하고 싶어했다는 증언도 나와 있다.

영화의 첫 신은 충격적이다. 폴(말론 브란도)이 쟌느(마리아 슈나이더)를 강간하는 장면은 시나리오에도 없었다. 촬영 당일 남자 주인공인 말론 브란도에게 베르톨루치는 특별한 주문을 했고 19살 여주인공인 슈나이더는 아무것도 모른채 카메라 앞에 섰다. 부자집 막내딸인 쟌느는 부르조아의 전형이었고 말론 브란도가 연기하는 폴은 베르톨루치 감독 자신의 대리인이었다. 외설이냐, 예술이냐로 평론계를 들끓게 했던 영화는 베르톨루치의 죽음으로 또다시 21세기 포털의 법정으로 소환될 태세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 보자. 자살한 아내의 유품은 또다른 사내의 체취였다. 아내는 위층에 세들어 사는 마르셀이란 남자에게 자신과 똑같은 파자마, 똑같은 술, 똑같은 육체를 제공하며 살았다는 것을 안 순간 남자는 길을 잃어버린다. 좌표 없는 길에서 만난 어린 여자와 격정적인 정사는 분노와 광기, 그리고 도피의 또다른 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베르톨루치는 이상적인 세상에서 버려진 현대인의 고독을 영상으로 그려 냈다. 그가 지향한 지점은 고독의 치유였다. 소통과 화해를 치유의 특효약으로 제시했지만 주인공들은 그 연결망을 거부한다.

오히려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관계를 추구하는 쪽이 베르톨루치가 하고 싶었던 현대인의 모습이다. 베르톨루치는 현대인의 고독을 육체적 소통이라는 극단의 도구로 표현했지만 그 모습 속에서 역설적으로 출구를 찾아 나선 것이라고 평론가들은 아름답고 후하게 평가해 주고 있다. 향년 77세. 앞서 이야기 한 그의 역작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1972년), '마지막 황제'(1987년), '몽상가들'(2003년) 등을 남긴 베르톨루치의 죽음으로 세계 언론들은 20세기 중반 스크린을 수놓은 마지막 영화 거장이 무대 뒤로 사라졌다고 급전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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