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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

심수향

11월에도 꽃이 필 수 있다는 듯이
배추가 제 삶의 한창때를 건너고 있다
꽃을 피우고 싶어하는 푸른 이마에
금줄같은 머리띠 하나 묶어주려고
이참 저참 때를 보고 있는데
누군가 배추는 중심이 설 무렵
묶어주어야 한다고 귀뜸을 한다
배추도 중심이 서야 배추가 되나보다
속잎이 노랗게 안으로 모이고
햇살 넓은 잎들도 중심을 향해 서기 시작한다
바람이 짙어지는 강물보다 더 서늘해졌다
띠를 묶어주기에는 적기인 것 같아
결 재운 볏짚을 들고 밭에 올랐더니
힘 넘치는 이파리가 툭 툭 내 종아리를 친다
널따란 잎을 그러모아 지그시 안고
배추의 이마에 짚 띠를 조심스레 둘렀더니
종 모양 부도처럼 금새 단아해졌다
부드러운 짚 몇 가닥의 힘이 참 놀랍다
이제 배추는 노란 제 속을 꽉꽉 채우며
꽃과 또 다른 길을 걸어갈 것이다
추수 끝난 들녘에 종대로 서 있는 배추들
늦가을의 중심으로 탄탄하게 들어서고 있다

△심수향: 울산 출신으로 2003년 <시사사> 신인상과 2005년 <불교문예> 신춘문예 등단, 한국펜본부 울산펜문학회, 숙명문인회 회원, 시집으로<중심> <잠깐 스쳐가는 잠깐> 봄시 동인으로 활동 중.

 

한영채 시인
한영채 시인

계절이 중심을 건넌지 오래다. 보름달도 기운지 한참 되었다. 올해도 마지막 한 달을 둔 11월을 이제 며칠 남기고 있다. 흐르는 구름처럼 봄이 왔다가고 찬란했던 초록과 거대한 눈을 가진 태풍도 다녀가고 노란 은행잎이 날리는 가을거리에 쓸쓸함이 오고 또 다른 계절을 기다리고... 소용돌이 중심의 가장자리는 숨 막히게 잔잔하고 고요하여 고요가 중심이다. 삶의 중심엔 내가 서 있듯이, 배추도 사람도 중심이 바로 서야 그 어떤 것도 온전히 자기화 될 수 있다. 알을 심듯 노란 제 속을 꽉꽉 채워야 중심이 단단해진다는 심수향 시인의 시선으로 배추의 전언을 통해 삶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주말에는 먼 곳에서 첫 눈이 내리고 조금씩 추워진다는 소식에 서둘러 애벌 김장을 했다. 영남지방은 12월 중순이 김장철인데 김장의 재료인 무와 배추 수확은 서리가 내리기 전에 마무리를 해야 할 것이다. 만인의 입맛으로 11월의 꽃으로 다가온 배추는 푸른 이파리를 한 꺼풀 벗기자 아싹아싹 노란 속살을 드러내며 엉덩이 동그랗게 앉아 종 모양 부도처럼 단아한 모습으로 그동안 늦가을의 중심을 잘 잡았노라고 한다. 파,마늘, 생강을 섞어 붉은 고춧가루와 갖은 양념을 만들고 노란 속살에 쓱쓱 버무리니 달콤한 향내가 집안을 진동한다. 우리의 입맛을 한층 돋우겠다. 가족의 한겨울 몸속의 중심을 잡아주겠다.
 한영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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