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석에 놀아난 망령이 살아왔다
이강석에 놀아난 망령이 살아왔다
  • 울산신문
  • 승인 2018.12.03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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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두 시인·소설가

전라남도 광주를 빛고을이라 부른다. 일제에 항거하여 일어난 광주학생의거와 5·18의 그 무지한 군사폭거에 맞서 생죽음의 피로 민주화의 꽃을 피우게 한 광주시민들의 장렬한 희생이 도시의 명칭까지 자랑스럽게 빛고을로 부르게 한 것이리라. 

하지만 그런 내력에 의해서라면 어찌 부산과 경남 그리고 울산을 제쳐놓을 수 있으랴. 일제에 항거하여 일으킨 학생운동이라면 소위 노다이사건, 그리고 울산비행장사건을 빼놓을 수 없다. 또 민주화를 두고라면 부마사태를 불러온 부마항쟁을 뒤로 할 수 있을까? 

우리 고장의 일이면서 덜 알려진 울산비행장사건은 어떤 것인가? 진주만의 기습을 시작으로 세계2차대전을 일으킨 일본은 시간이 갈수록 패전이 짙어지고 있었다. 최후의 발악으로 학생들을 강제징집하는가 하면 학생들로 근로보국대를 만들어 군사시설을 보수 또는 신설하게 된다. 

군용비행장으로 전투기를 집결시켜놓던 울산비행장은 지금의 문화예술회관 일대에 있었지만 전쟁을 위해서는 활주로를 넓히고 비행장까지의 보급로를 확장해야한다는 판단이었던 것이다. 

마침 이 정보를 지인으로부터 들어 알게된 사람은 울산에서 부산상고에 유학중이던 윤진옥이었다. 윤진옥은 노다이사건의 대열에 끼여 보고 느꼈던대로 고향 울산에서도 항일투쟁을 벌이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또 울산비행장의 근로보국대는 울산농중(현 울산공고), 마산상고, 김해농중이 참가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틈 나는대로 해당 학교를 찾아 주모자를 모으고 투쟁방법 등을 미리 의논해 두었다. 일본의 패전이 거의 현실로 나타날 무렵인 1944년 9월 5일 오전 11시 4개교 1,000여 명의 학생들이 울산농중 운동장에 모였다. 식을 끝내고 학생들은 활주로 공사장과 보급로 공사에 각각 나누어 일제히 작업에 들어갔다. 

사전에 일러둔 시간이 되자 윤진옥이 삽을 내던지며 호각을 불자 학생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고 삽과 곡갱이를 휘두르며 감독관인 일본군을 에워싸며 밟거나 주먹으로 내려치게 되었다. 달아나는 일본인들은 손을 싹싹부비며 무릎을 꿇고 살려줄 것을 애원하고 있었다. 통쾌한 순간이었다. 근로보국대를 격려하기 위해 울산으로 오고 있던 일본인 경남지사도 삼호교까지 왔다가 줄행랑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그 후 많은 학생은 투옥되고 퇴학당해야했다. 보훈처는 사건의 주모자였던 유진옥을 독립운동에 기여한 자로 인정하고 그의 딸인  윤명희 전 울산시의회 의장에게 그 상을 전달했다. 이와 같이 일제에 항거한 자나 민주화에 공헌한 인물은 방방곡곡 어느 지방에 없는 곳이 없을만큼 많다. 

광주는 그 가운데서도 너무나 큰 상처와 참혹한 수난을 겪고 굳굳하게 일어선 도시다. 그때의 진상이 차츰 밝혀지고 있지만 그 끔찍한 죄상은 생각할수록 치가 떨린다. 마구 쏘아대는 총탄도 모자라 탱크로, 헬기로 그것도 모자라 성폭력까지 저지른 그 만행은 어느 세월에 가서야 죄를 면할 것인가? 그래서 광주와 광주시민들은 이 역사의 죄를 속으로 품고 응어리를 안고 살아왔기에 빛고을의 명예를 누릴 자격을 가진 도시라고 내세울만한 도시요, 시민인 것이다. 그런데 이 빛고을에 안타깝고 어이없는 일이 생겼다. 명예로운 그 고장 빛고을의 빛을 희미하게 만드는 사건이 생긴 것이다. 

가짜 이강석 사건은 까막득한 이승만정부시절 권력을 타작마당의 도리깨처럼 휘두르던 이기붕의 아들 이강석을 대통령의 양자로 삼게 하여 일약 권력자로 떠으르게 된 이강석을 팔아 경주경찰서장에게 전화를 하자 경찰서장이 불난집에서 뛰쳐나가듯 달려가 진탕 향응을 베풀어 세간에 화제를 만들어낸 사건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사회상으로 보아 있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흘러간 그 때 그 시절 이강석에게 어리석게 놀아나 화제를 낳았던 어느 기관장의 망령이 하필이면 광주 시민의 큰 지지로 시장을 지낸 윤 전시장에게 살아와 붙어서 더 안타깝고 더 어이없어하는 일이 되고 만 것이다. 이 사실이 알려진 후로 시민들은 얼마나 허탈해하고 국민들은 또 실망감을 갖게 되었을까?

어느 누군가의 여인이 권양숙여사를 찍었으니 망정이지 영부인을 팔고 닮은 음성을 홀렸다면 길거리에 나가 앉더라도 사는 집을 팔아 송금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정하기에 충분한 꼴이다. 참으로 안타깝고 어이없는 경우라도 이보다 더한 것이 또 있을까? 아직도 돈으로 환심을 사 한 자리 얻겠다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면 그는 광주시민만 아니라 국민들에게 너무 큰 죄를 저질렀다. 

문자 한 줄에 담긴 이름자 하나로 거금 4억 5,000만 원 그것도 급히 대출을 받아 송금한다니 이건 기가 막혀 기절하고 말 일이다. 광주가 고향인 지인이 귀띔하기를 "그사람이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닌데 아무래도 마가 꼈나봅니다." 했다. 그래서 왕창 돈 뺏기고 망신보는 바보가 되고만 윤강현씨 만하랴 싶다.

허나 마(魔)도 그렇다. 불교용어에서 생긴 이말은 훼방을 놓는 귀신이나 방해물을 가르키는 산스크리트어이다. 불교가 줄곧 가르치는 "마음을 비워라"만 새겼어도 이같이 불행한 일은 당하지 않았으련만...아 이 애달픔을 어이 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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