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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강국을 자처하는 대한민국이 지사 시설 일부가 불에 타면서 엄청난 재난사태를 빚었다. 바로 서울 KT 아현지사 화재 사고 이야기다. 문제는 아현지사의 화재 사건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안전망이 뚫렸다는 사실이 더 심각한 사실이다. 울산의 경우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울산지역의 모든 통신시설이 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D급이라는 사실이 본지의 취재로 확인됐다. 설상가상으로 울산 지역의 경우 지자체의 자가 통신망 구축이 이뤄지지 않아 통신 재난 발생 시 민간 피해뿐 아니라 행정 마비까지 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지역별 D급 통신시설 현황'에 따르면 울산에는 총 31개의 D급 통신시설이 설치돼 있다. 이번에 사고가 발생했던 KT는 7곳, LG 12곳, 기타 12곳 등이다. 화재 방지 시설 설치 의무 규정이 있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점검해 비교적 안전한 것으로 평가되는 A~C급 통신시설은 한군데도 없었다. D급 통신시설은 사업자가 자체적으로 시설을 점검해왔다. 백업 회선의 설치 의무가 없어 케이블 장애가 발생할 경우 속수무책이고, 소방법상 방재설비를 구축할 필요가 없어 화재에도 취약하다. 

울산 등 지방의 경우 지하에 각종 케이블이 얽히고 설켜 위험성이 더 크다는 지적도 있다. 

김경진 민주평화당 의원은 지난 26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긴급 현안보고에서 "지방은 선이 정말 개판이다. 수없이 많은 선을 아무 데서나 따서 붙인다. 제대로 된 업자들이 시공도 안 한다"고 지적했다. 통신업계에서는 지방에서 수도나 가스, 전기업체에서 매설 중 통신선을 발견하면 도려낸다는 풍문이 나돌 정도다. 기존 통신선을 우회해 새로 길을 내는 것보다 사후에 불법이 적발되면 벌금을 내는 게 비용이 적게 든다는 것이다. 

울산의 경우 서울처럼 케이블 매설 현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지하 지도'가 없어 사고 시 체계적인 대응도 어렵다. 이뿐 아니라 울산에 자가 통신망이 없어 재난 발생시 행정 마비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등은 시청과 구·군청, 동사무소 등을 연결하는 자체 통신망을 구축해 사용하고 있다. 재난·재해, 방범, 교통 등과 연결되고, 공공와이파이 등 서비스도 이뤄진다. 대구의 경우 대구 전역에 있는 기관 391곳을 모두 연결하는 추가 자가 통신망 구축 사업도 추진 중이다. KT 아현지사 화재가 발생하더라도 자체 통신망이 존재하기 때문에 행정 업무 차질을 최소화 할 수 있다. 

하지만 울산에는 10여 년 전 교통 관리를 위해 설치한 118km가량의 자가 통신망이 전부다. 대부분의 행정 기관에서는 민간 통신사의 통신망을 이용하고 있다. 통신시설에 대한 관리 권한도 없는 만큼 사실상 통신 재난에 대한 대비가 아무것도 없는 셈이다. 자가 통신망 구축이 이뤄지지 않은 것은 초기 투자비용 때문이다. 서울 등은 조성된 지하철을 이용해 큰 비용을 투입하지 않고도 통신망을 구축할 수 있지만 울산은 통신선 설치 경로 지정, 지중화에 따른 공사비 등 상당한 기간과 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또 광역지자체 가운데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는 반면 가장 적은 인구를 가지고 있어 비용대비 효율 또한 걸림돌이다.

하지만 이번 KT 아현지사 화재에서 막대한 사회적 손실이 발생해 상황이 달라졌다. 때문에 자가 통신망 구축에 대해 다시 면밀한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이와 관련 울산시 관계자는 "과기정통부가 통신 관련 부처와 통신사가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를 꾸리는 등 관련 대책을 마련 중이다. 추후 정부의 방침을 이행하는 한편 지역 통신 사업자들과도 별도로 만나 대책을 논의하는 등 종합적인 통신 재난 대비에 나설 방침이다"고 밝혔다. 늦은 감이 있지만 울산시가 철저하게 대응해가겠다니 지켜볼 일이다. 

통신망의 경우 일반 사기업의 사적 재산이 아니라 사회공공망이자 국가적인 인프라다.  단 한 순간이라도 연결망이 사라지만 지탱하기 어려운게 현대 사회다. 그래서 지금의 시대를 초연결사회라 부른다. 초연결사회를 지탱하는 기술이 발달할수록 위험 요소도 증가하기 마련이다. 정보의 통로가 훼손되면 연결이 끊어져 심리적 불안과 사회적 혼란이 발생한다. 통신망은 단순 통화연결 기능을 넘어 안보·금융·의료·산업·치안·교통 등 우리 사회 모든부문과 직결돼 있다.  한 순간이라도 정지되거나 허술하게 관리되면 국민 생명과 재산에 치명적인 위험을 초래하고, 우리 사회의 위험도를 증폭시킨다. 

지금부터라도 통신망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 무엇보다. 통신망 관리의 문제는 기초부터 하나씩 제대로 점검해서 안전한 기반을 다져가야 한다. 초고속인터넷이 우리의 생활에 더 중요해질수록,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통신망의 안전 확보가 중요해졌다. 이번 서울의 화재는 통신망 안전을 위한 중요한 계기로 삼아야 한다. 무엇보다 울산의 관리 시스템도 당장 손질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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