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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초, 눈부시게 빛나는 무거천 낙엽들이 사각사각 밟히는 때였다. 적십자 회비 고지서를 들고 삼호동 8통 주민들과 연애가 시작된 것도 이 때였다. 당시 나는 몸이 안 좋았다. 추간판탈출증으로 시작해 협착이 오고, 급기야 터지는 바람에 수술을 하고 넉달이 지나자 몸이 무기력해지고 의욕도 없었다.

'통장이라도 하면 책임감에 활력을 얻고 운동도 하게 돼 건강을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단순한 생각으로 통장 생활을 시작했다. 이제 지난 6년을 마무리 할 단계에서 뜻밖에도 독거노인 보호사업 유공자로 선정돼 12월 4일 서울 중구 소재 우리은행 본점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지난날을 돌이켜 보는 소중한 시간을 갖게 됐다.

적집자 회비 고지서를 돌리던 첫 날, "TV 안 봤느냐, 떼먹을 돈을 왜 내느냐?"는 아주머니, "예전에 보니 적십자 회비를 거둬 통장들에게 일부 나눠 주던데 몇 %먹소?"하며 빈정대던 아저씨의 부정적 시선이 안타까웠다. 그래도 사용처를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다. 통장으로써 맡은 소임을 책임지고 성심껏 활동을 하다 보니 2017년 1월에 통장회장을 맡게 됐고, 그 해 12월에는 삼호동 통장회를 중심으로 '삼호동 벚꽃사랑회'를 구성해 매주 노인복지관 급식봉사를 하고 있다.

2016년 9월부터 3년째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으로 위촉돼 어려운 이웃과 도움이 절실한 독거노인을 찾아 연계해 주고, 홀로 사시는 어르신에게 사랑의 도시락 배달도 하고 있다. 독거 어르신 안부를 살펴서 도움이 필요하거나 돌아가신 상황이 발생할 때에는 행정복지센터에 연락하는 등 행정과 주민간 가교 역할에 앞장섰다. 우리 통장단은 무거지구대와 함께 우범지역 순찰활동도 하고 있다. 통장으로써 행정의 보조역할을 넘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봉사를 하게 되니 서로 간 정이 깊어지고 삶의 보람이 더해진다.

특별히 올해 8월부터 3개월간 동 행정복지센터 3층의 방치된 공간을 주민사랑방으로 새 단장해 주민들에게 돌려주는 프로그램 '삼호동 주민학교'도 열었다. 통장 20명이 공간을 설계하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나누는 소중한 체험을 하게 됐다. 공간 조성을 행정이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사용할 주민이 주체적으로 참여해 보니 주민자치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경험을 쌓게 돼 유익했다.

삼호 철새마을 조성사업의 하나인 주택 옥상 태양광 1차 494가구 설치 시에는 태양광 효과에 대한 주민 인식이 부족하던 때라 가구마다 찾아가 설명하고 설득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따랐지만 2차 200가구는 전기요금 절감 혜택을 받고 있던 1차 사업 주민들 입소문으로 수월하게 사업이 완료됐다. 이제 주택 태양광이 삼호동 자랑거리가 되니 우리 통장들은 자긍심과 뿌듯함으로 의기투합해 더 큰 협업에도 자신감을 갖고 나설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살다보면 뜻하지 않는 고통이 오기도 한다. 지난 2월 철새 탐사를 갔을 때 갑작스러운 아들의 비보에 '하늘이 무너진다'는 말의 의미를 그때서야 알게 됐다. 사랑하는 아들이 없는 세상에서 9개월, 슬픔에 잠겨 눈물 흘릴 시간도 없이 뛰어다니며 많은 사람들과 함께한 것이 힘든 고비를 잘 견디어 낼 수 있는 힘이 됐다. 주변의 따뜻한 사랑이 있기에 남은 여정을 더욱 아름답게 살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함께 해온 동료 통장들, 삼호동 행정복지센터 공무원들 정말 고맙고 또 고맙다.

이제 삼호동 행정복지센터와 함께한 6년간의 통장 생활을 마무리 한다. 하지만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으로써 행정에서 보지 못하는 부분을 세심히 살펴 복지사각지대에 방치되는 이웃이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통장! 함께라면 못할 게 없다. 재미난 봉사, 보람있는 봉사로 누군가를 돕는다면 삶의 활력도 되고 나도 성장하고 또 큰 상을 받는 행운도 덤으로 얻게 된다. 날마다 사람의 마음을 챙기며, 서로 북돋우며 살아가는 따뜻한 가슴을 가진 우리가 됐으면 한다. '주민이 먼저'인 남구의 참뜻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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