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니
사랑니
  • 울산신문
  • 승인 2018.12.06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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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숙자 수필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랑니 하나를 품고 있다. 발바닥에 티눈 하나 빼듯 뽑아버리면 그만인 것을 쉬 외면하지 못한다. 열여덟 꽃띠에 만나 여태껏 친구처럼 지내 왔으니 미운 정도 적지 않나보다. 

사랑니가 날 무렵, 놀기를 좋아해서인지 친구들이 많았다. 불확실한 미래를 놓고 상상의 나래를 폈다 지우기를 반복하던 꿈 많았던 시절이 아닌가.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 문학에 빠진 친구, 그림을 그리는 친구 등 다양한 취미를 가지고 있는 무리 속에서 아무리 찾아봐도 나의 잠재된 끼나 능력은 보이지 않았다.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나는 친구들과 열을 맞추지 못하고 사랑니처럼 뒷자리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든 겁이 없었던 내가 자신의 꿈을 찾아 대학으로 첫발을 내딛는 친구들 앞에서 기가 단단히 꺾이고 말았다. 가까운 친구들이 세상을 향해 자신의 꿈을 다지며 튼튼한 어금니가 되어 가는 동안, 점점 초라해져갔다. 앞날에 대한 막연함은 사랑니를 앓듯 표 나지 않는 가슴앓이가 되어 청춘 시간을 혼란 속에 빠트렸다. 

그때 위로가 되어준 건 친구였다. 다홍빛 낙엽에 고운 시를 적어 비닐코팅으로 책갈피를 만들어 주기도 하고, 생일이면 자신의 글을 액자에 담아 선물 해주던 감성 깊은 벗이다. 그 친구가 진학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럭비공 같았던 나의 마음을 순식간에 안정시켰다. 처지가 비슷해진 우리는 이전보다 훨씬 가깝게 지냈다. 뒷전으로 밀린 것 같았던 청춘의 시간을 회복하기 위해 서로 앞니를 물었다. 책을 사서 바꿔보기를 좋아했고, 아랫목 이불 속에 같이 발을 묻고 장갑 목도리 스웨터 짜는 취미도 붙여 보았다. 

친구를 만나면 무료했던 시간은 장난기로 넘쳐났다. 센치한 날은 아카시아 잎을 따다 꽃점을 치며 미래에 대한 호기심을 풀어 보기도 했다. 그렇게 보내는 동안 젊은 날은 복사꽃보다 화사하게 피어났다. 앵두같이 탐스럽게 익어가던 친구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성의 친구를 만나 사랑에 빠져 있었다. 

얼마 후, 친구로부터 배필이 될 사람을 소개 받았다. 예술가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한복차림에 머리까지 묶은 총각일 줄은 상상 못했다. 친구에게 이처럼 자유로운 영혼이 있었나 생각하며 기꺼이 축하해주고 잘 살아가길 기도했다. 청사초롱 불 밟힌 향교 뜰에서 사모관대를 갖춘 신랑과 연지곤지 찍은 신부가 백년가약을 맺었다.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우리의 청춘은 그렇게 지나갔다. 추억은 가슴 속 한켠을 수놓은 채 서로 다른 도시 생활로 몇 년이란 시간이 지나가고 있을 때였다.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를 타고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단번에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친구를 만난다는 기쁨에 아이 둘을 맡겨놓고 모처럼 혼자 나선 외출이 딴 세상 같았다. 웃고 울었던 소녀 시절로 돌아간 듯 마음은 하늘을 날고 치맛자락도 덩달아 나풀거렸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여전히 차분한 옷매무새에 고른 치아를 드러내며 나를 반겼다. 친구와 함께 온 일행이 있어도 개의치 않았다. 반가운 마음에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조용한 찻집으로 옮긴 후 나를 찾아온 진짜 화두를 듣게 되었다. 친구를 따라온 일행이 우리 사이에 끼어 뭔가를 설명하느라 열을 올렸다. 무슨 말인지 종잡을 수 없었으나 요지는 당장 몇 백 만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이었다. 

아둔한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고민에 빠졌다. 친구를 봐서라도 부탁한 돈을 보내 주는 게 옳은가 싶기도 하고, 보내기만 하면 그 돈이 새끼를 쳐서 내 통장에 매일같이 몇 만 원씩 들어온다는데, 이 뜬구름 같은 말을 믿어야 하나, 생각은 생각의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세상 물정을 모르는 숙맥이었다. 땀 흘리지 않아도 금세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처럼 느껴졌다. 분명한 것은 무엇이든 똑 부러지게 해내는 친구를 의심할 수가 없었다. 

문제는 돈이었다. 나를 찾은 친구의 마음이 내 마음과 달라서 서운한 건 둘째 치더라도, 모처럼 부탁한 청을 어떻게 거절해야 하나 이만저만 난처한 게 아니었다. 

안 된다고 말했다가 우정에 금이라도 가면 어쩌나 불안한 것도 사실이었다. 이만한 일로 우리 사이가 소원하져도 하는 수 없다는 마음을 다지자 거절할 용기가 생겼다. 빠듯한 살림살이에 몇 백 만원이라는 여윳돈이 없는 것도 분명한 거절의 이유였다.

떠도는 소문으로 보면 그 사이에 여러 친구를 다단계 사업에 끌어들인 모양이었다. 얼마가지 못해 돈 잃고 친구를 잃고 만신창이가 된 친구였다. 

벌이가 시원찮은 남편 대신 무엇이라도 하려다 빚만 지게 된 그가 아닌가. 겉으로는 위로를 하면서도 내심 친구의 존재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우정을 앞세우며 걸려오는 전화마다 돈 이야기였다. 한두 번 청을 들어주다 이제는 전화벨이 울리는 것조차 겁이 난다.

오랜 세월 함께 해온 친군데 모른 척하지도, 고통을 함께 나누지도 못하는 내 모습이 한심했다. 한때는 둘도 없이 다정한 친구가 아니었던가. 삐뚤어가는 마음을 고쳐먹기 여러 번, 그럴 때마다 번번이 갈등만 부른다. 진하게 배어있던 우정일수록 빠져나가는 시간도 더딘 모양이다. 아름다웠던 지난날을 되돌아보자니, 나야말로 친구에게서 사랑니처럼 버림받지 않았나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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