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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는 구걸로 살아가면서 배 두들기는 허세는 제법인 자를 두고 하는 말이 번간걸여다. 예전엔 빨갱이들을 두고 사용했던 사자성어다. 문닫아 걸고 적은 글이나 산중에 숨어 외친 목소리는 절대로 드러내지 않는다. '빨갱이' 이야기를 하면 누구나 부담스럽다.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댄데 '빨갱이' 운운하느냐고 당장 인터넷 댓글이 삿대질로 도배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빨갱이'는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엄연히 있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마취제처럼 복용한 박정희 세대들에게 빨갱이는 피를 끓어오르게 할 만한 단어지만 우리는 하나라는 구호를 구름 위에 걸었던 이해찬 세대들에게 빨갱이는 수구골통의 전리품에 불과하다.

80년대 대학생들이 마르크스주의에 열광했던 이유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 상당수가 마르크스를 벗어 던지고 합리적 비판주의자로 변신했다. 그 이유는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한 자들은 초심과 달리 전체주의나 맹목적 주체사상 신봉자로 변질하기 쉽다는 자각 때문이었다. 사회가 점진적인 진보로 나아가는 것은 필연적 과정이다. 문제는 빨갱이조차 진보로 분칠하고 팔짱을 낀다고 함께 웃으며 걸어갈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이야기의 서두가 장황하지만 결론은 김정은이다. 그를 오라고 모시려는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뉴질랜드로 가던 비행기에서 우리 대통령은 그의 서울행을 국민 모두가 쌍수로 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방송이 '백두혈통' 운운하던 시기부터 생긴 자신감이다. 그 때부터 우리 사회에 찬양고무죄는 무색해졌다. 그 날 이후 악의 축 김정은은 귀염둥이로 변했고 예의와 지성을 갖춘 지도자로 변신했다. 광화문에서 남쪽의 대학생들이 배려와 존경을 표하고 칭송단과 환영단을 꾸리고 있다. 이 땅에 남은 마지막 순혈 빨갱이를 우리 대학생들은 그렇게 바라보고 있다. 물론 아주 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문제는 그들이 칭송하는 김정은의 실체다. 과연 김정은은 달라졌는가. 핵무력 운운하며 툭하면 불바다를 이야기하던 그 입은 다른 입이 된 것일까. 개과천선하고 속죄읍소를 하는 통과의례는 거친 적이 있단 말인가. 연평도를 무차별로 부수고 고모부와 이복형을 뭉개버린 바로 그 자가 아니란 말인가. 새벽이든 심야든 천막아래 불기둥 보며 으랏차차 광명을 외치던 바로 그 자는 다른 김정은인가. 지난 여름에 했던 그 수많은 패악질은 단 한 번의 언급도 없었는데 싱가포르 한번 다녀오고 비무장지대 한번 오르내린 행보로 김정은은 이미지 변신을 완벽하게 마쳤다. 그동안 북한방송에서 비친 모습을 통해 부정적인 인물상으로 희화화되곤 했던 김정은은 이제 긍정과 평화의 코드로 자리 잡아 제발 어서 남쪽으로 내려와 서울의 붉은 달 아래 어영청 권주가를 듣고 가라고 사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김정은이 누구인가.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세습왕조의 후예이자 골수까지 빨갱이인 김일성 독재왕국의 살아 있는 유산이다. 김정은의 왕조세습 과정은 피의 역사다. 1인체제를 굳건히 하기 위해 패악을 마다하지 않은 할아비를 흠모하는 자가 김정은이다. 피 냄새를 따라 킁킁거렸던 할아비를 닮아 고모부 장성택을 찍어내고 독재의 축을 하나로 만들었다. 그리고 지난 세월 김정은은 군부와 노동당의 절대 복종과 충성을 강요하며 수시로 핵을 쏘아올려 왕조의 세습완성을 자축했다. 

문제는 패악질과 핵놀음의 돈줄이 막혔다는 점이다. 외화벌이와 해킹, 강제노역으로 거둬들인 돈줄은 역겨운 뱃살을 유지하는 자금줄이지만 제재국면의 장기화는 체제붕괴로 이어질 수 있기에 변신이 필요했다. 딱 그 장면에 동아줄이 평창올림픽이었고 그 지점부터 김정은은 완벽하게 변신했다. 

제재국면 이전까지 김정은 정권의 돈줄은 다양했다. 개성공단이 폐쇄되기 전까지는 매년 대한민국에서 개성공단 근로자들 임금명목으로 1,000여 억 원의 달러가 입금됐다. 그뿐인가. 세계 각국에 위치해 있는 북한 대사관에서 마약, 약품 등 밀거래를 통해 수천억원을 벌어들였고 중동과 러시아, 중국 등에 노동자를 보내 그들이 벌어들이는 수익 대부분을 김정은의 계좌로 이체했다. 하지만 제재가 강화되면서 이들 돈줄이 무력화 되거나 감소되자 다른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에 따르면 김정은은 조선노동당 직속 정찰총국 산하에 121부대라는 해커 부대와 180부대를 운영하며 대북제재를 회피해 핵·미사일 개발에 필요한 외화벌이를 지속적으로 벌이고 있다.

지난 2014년 소니픽처스 엔터테인먼트를 비롯해 2016년 방글라데시 중앙은행 등 세계 각지 금융시스템을 해킹했고, 지난해 5월 150여 개국 30여 만 대의 컴퓨터에 피해를 입힌 랜섬웨어 워너크라이, 한국 가상화폐 거래소를 해킹해 자금을 빼돌린 징후가 포착되는 상황이다. 제재국면 속에서도 북한은 40개의 외국 영사관을 통해 외화벌이를 이어나가고 있다. 수년전 노르웨이 언론이 현지 북한 대사관이 담배와 주류를 면세 수입하여 현지에서 판매하는 방법으로 아주 큰 차익을 얻었다고 고발한 적이 있다. 지금도 유럽의 공관들은 이런류의 외화벌이를 계속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에는 북한 노동자는 10만 여명이 있다고 한다. '현대판 노예'로 간주되는 북한 노동자는 오로지 외화벌이로 자신들의 삶을 허비하고 있다. 이들이 벌어들인 외화 역시 김정은의 통치자금이 되는 게 현실이다. 

바로 그 무자비한 통치자, 괴뢰도당의 수괴가 김정은이다. 그런데 남쪽은 변했다. 우리는 하나다라는 구호로 괴뢰의 수괴가 귀염둥이가 됐다. 좌든 우든, 진보든 보수든 결국은 우리민족 아니냐며 우리는 하나에 동참하라고 툭툭 던진다. 동참하지 않으면 우리가 아니란다. 그 분위기를 만든 쪽이 대한민국 방송이다. 이명박이 반대를 우기고 허가한  종편은 촛불의 생중계로 시청률을 끌어올리고 이제 남북 화해의 일등공신이 됐다. 공중파가 발끈했다. 내려앉은 시청률을 만회하기 위해 무리수를 뒀다. 온나라 사람들이 시청료를 헌납하는 공영방송 KBS가 이제 온 국민의 잠자리를 불편하게 한다.

잠들기 전 뉴스 시간까지 재껴버린 '오늘밤 김제동'이야기다. 이 프로에서 좌파 방송인의 상징이 된 김제동이 '김정은 위인 맞이 환영단'의 단장을 인터뷰했다. 앞서 그 단장이라는 자는 지난달 2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열렬한 팬"이라고 소개한 뒤, "김정은 위원장의 방문을 환영한다. 나는 공산당이 좋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바로 그 단장은 '오늘밤 김제동'에서도 튀는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김정은 위원장에 대해 "우리 정치인들에게 볼 수 없는 모습을 봤다. 겸손하고, 지도자의 능력과 실력이 있고, 지금 (북한) 경제발전이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정말 팬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국제적으로 비판받고 있는 북한의 세습과 인권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엔 "박정희 전 대통령 이후에 박근혜 전 대통령도 대통령이 되고, 시진핑이나 푸틴은 20년 넘게 하는데 왜 거기는 세습이라고 이야기 안 하냐"고 말하기도 했다. 어처구니 없는 이 말들이 대한민국 공영방송에서 생중계 됐다. 

이게 바로 대한민국 공영방송의 현실이다. 종편은 아예 매일같이 김정은 특집방송 중이다. 온다 안온다부터 온다에 몇 %로 내기방송을 이어나가는 모양새다. 오면 어디로 어떻게 이동하고 어떤 퍼포먼스를 연출할지가 프로그램의 콘셉트가 됐다. '자극하고 무한 반복하라'는 괴벨스의 군중심리는 종편의 특성이 됐다. 대한민국 종편은 이제 주류 언론으로 자리했고 어떤 것도 모르는 게 없는 팔방미인 패널들이 시사부터 연예와 심리상담까지 전 방송을 누비며 시청자들의 귀를 간지럽히고 있다. 

그 팔방미인들은 이제 종편을 넘어 공중파의 주요 패널로 우리 사회 여론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바로 그들이 김정은이 온다는 설만으로 그의 발길에 매일같이 상상력을 더하고 있다. 어쩌다 이런 일이 가능해졌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적어도 그가 온다면 구걸로 배불린 사실을 숨긴채 허세만 부리지 말 것과 왜 오는지, 왜 와야 하는지는 제대로 물어봐야 하겠지만 그런말은 어떤 채널을 돌려도 제대로 들리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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