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서 앓이
박항서 앓이
  • 김진영
  • 승인 2018.12.18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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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편집이사 겸 국장

베트남이 '박항서 앓이'로 연일 뉴스의 화제다. 스즈키컵 우승으로 국부 반열에 오른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 국가대표 축구팀을 이끌고 내년 1월 5일 아랍에미리트(UAE)에서 개막하는 아시안컵에 출전한다. 베트남이 이 대회 본선에 오른 건 12년 만이다. 지난 2007년 공동 개최국 자격으로 참가해 8강전에서 이라크에 0-2로 패했다. 아시안컵에서의 베트남 축구는 험로에 놓여 있다.

베트남은 이란·이라크·예멘과 함께 D조에 속했다. 쉽지 않은 상대들이다. 특히 조 최강자인 이란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에서 아시아 최고인 29위다. 베트남(100위)보다 71계단 높다. 베트남으로선 조 1, 2위를 하거나, 조 3위 중 상위 4팀에 들어야 16강에 오른다.

박항서 감독의 축구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그는 1978년 제20회 아시아 청소년 축구대회에 참가하는 20세 이하 청소년 대표로 선발된 이후 1979년 당시 대표팀 2진인 충무에 선발됐으며 1진인 화랑팀을 오가며 활동했다. 1981년 실업 축구단이었던 제일은행에서 자신의 성인 축구 경력을 시작했고, 곧바로 육군에 입대해 군 복무를 마쳤다. 1984년 럭키금성 황소에 입단한 뒤 1988 시즌이 끝난 뒤 은퇴했다.

코치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그는 국가대표 감독으로 히딩크가 선임되자, 감독과 선수들의 가교 역할을 하며 선수단 융화를 일궈내는 등 2002년 FIFA 월드컵 4강을 이룩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월드컵이 끝나고 거스 히딩크 감독이 떠나자 2002년 8월 대표팀 감독에 선임됐으나, 이 과정에서 대한축구협회가 정식 계약을 하지 않아 무보수 임시 감독이라는 논란이 나왔고, 정식 계약을 맺었지만, 2002년 아시안 게임에서 동메달을 따는 데 그쳐 아시안 게임 폐막 후 경질됐다. 창원시청 축구팀 감독을 마지막으로 실직자가 된 박 감독에게 베트남행을 제의한 것은 그의 아내였다. 동남아쪽 에이전트와 협상해볼 것을 아내가 권했고 결국 그 인연으로 베트남 국가대표 감독을 맡았다고 한다.

박 감독의 베트남 축구는 '악바리 축구'로 불린다. 베트남 성인 남성의 평균 키는 165㎝다. 박 감독은 빠르고 악바리 같은 축구로 이변을 연출했다. 박 감독은 "베트남이 아시안컵에선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 우리 선수 평균 나이가 23.5세다. 이란·이라크 등을 상대로 도전하는 입장에서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1년여 만에 베트남 영웅이 된 박 감독은 스즈키컵 우승 직후 상금 릴레이 잔치를 벌이고 있다. 베트남 자동차업체 타코 그룹 등 기업들이 포상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대부분 한화 1억 원 정도로 우리 경제 규모에 비하면 그리 많은 액수는 아니지만 베트남 사정으로는 그렇지 않다. 베트남은 쌀국수 한 그릇이 약 1,500원이고, 공무원 월급이 약 30만 원 정도다. 지난해 베트남 1인당 국민총생산(GDP)이 2,385달러(약 264만 원)였다. 박 감독은 현재 월급 2만2,000달러(2,500만 원)를 받고 있다. 그의 도전 정신이 그의 인생도 바꿨지만 국제결혼이나 사생아 문제 등으로 한국 이미지가 실추됐던 베트남에 새로운 한류를 불러오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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