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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교육을 얘기할 때 '어른은 아이의 거울'이라고 흔히 얘기한다. 하지만 정작 어른들은 이를 인식하고 있는지, 본보기가 되고자 마음을 다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자녀 상담을 하면서 만난 부모님들은 아이에 대한 다양한 고민과 답답함을 표현한다. 이러한 걱정의 대다수는 아이의 말이나 행동에 관한 것이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이 가끔 나에게 아이에 대한 고민을 드러낸다. 나는 그때마다 그 분들을 먼저 살피게 되는데, 아이의 문제점이라고 얘기한 것들이 아이를 만나지 않았음에도 그 어머니나 아버지에게서 볼 수 있었다.

조선시대 후기 실학자 박지원(1737~1805), 박종채(1780~1835), 박규수(1807~1876)는 3대째 이어진 명문가의 학자들이다. 이들은 밖으로는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며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으며, 안으로는 더 깊이 있는 지식을 탐구했다. 박종채는 연암 박지원의 아들이며 박규수는 박종채의 아들이다.

연암 박지원은 우리에게 익숙한 학자이지만 그의 아들과 손자는 낯설기도 하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뜻을 따라 배운대로 실천하고자 하였으며 많은 업적을 남겼다. 특히 '1816년 병자년 초가을 불초자 종채가 울며 삼가 쓴다'고 밝힌 '과정록'은 아들 박종채가 아버지를 그리는 애틋한 마음을 담고 있어 읽는 이들로 하여금 부자간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과정록'은 5년에 걸쳐 아버지의 행적을 본대로 들은대로 기록한 것으로 신상·생활상·교우·업적·저술 등을 총 3권으로 기록해 놓았다. 3권에는 박지원이 안의현감(安義縣監)을 마치고 돌아온 다음인 60세 이후의 행적을 소상히 적었다.

아버지 박지원은 손수 고추장을 담그고, 잘 익은 장을 자식들을 위해 챙기는 자상한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으며 아들들의 안부를 살뜰히 챙겼다. 박종채에게는 이런 아버지가 닮고 싶고, 기억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또한 할아버지 박지원이 살던 초당에서 열하일기, 연암집을 읽으며 자란 박규수는 실학과 개화사상을 잇는 혼란기의 선각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삶과 철학을 이어간 아들의 아들!. 훗날 박종채는 '거울에 비친 나는 또 다른 거울이 되었다'고 회상하며 자녀 교육의 중요성을 우리들에게 잔잔히 일깨워주고 있다.

아이들이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을 안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하라는 것을 그대로 하는 경우도 드물다. 즉 아이들은 본대로 들은대로 움직인다. 아무리 말로 훈육을 하고 책을 통해 교육한다 하더라도 아이들의 언어와 행동이 바뀌는 것은 쉽지 않다. 습관이란 우리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기억을 하고 있는 것으로 몸이 가장 안정을 느끼는 상태이다.

그렇기에 다른 방식으로 거스르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고 하던 대로 하는 고집스러움이 있다. 특히 어려서부터 몸에 배인 습관이 변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필자는 책을 볼 때 누워서 보는 버릇이 있다. 지친 하루를 마감하면서 포근한 침대에 누워 책을 보고 있노라면 그때서야 하루의 일과를 정리하는 듯한 나름의 습관이다. 그런데 언제부터가 중학생 아이가 책상에 앉아 있기 보다는 침대에 누워서 수학문제집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필자는 내가 누워서 책을 보는 것은 너와는 다른 의미를 가진다고 누누이 얘기를 했지만 아이 또한 나름의 공부 방식을 나에게 끝없이 얘기했다. 그래서 계속 내 주장만을 내세우며 말로 설득할 것이 아니라, 책상을 거실로 옮기고 앉아 책도 읽고, 일기도 쓰고, 일도 하기 시작했다. 보름이 지났을 무렵, 아이가 책상 한 켠에 자신의 책들을 가져다 두더니 다음날엔 앉아서 숙제를 하는 듯 했다. 나는 지금까지도 '앉아서 공부하니 집중도 잘 되고, 시간도 절약되지 않냐?'고 묻지 않고 있다. 거울에 비친 나는 또 다른 거울이 되고 있음을 늘 생각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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