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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장난스럽게 시작한 비꼼의 조어가 한 사회의 공용어휘로 등극한 경우는 자주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내로남불이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올라 있는 내로남불은 우리사회의 공식 어휘다. 사전은 친절하게 뜻풀이도 해뒀다. 그대로 인용하면 이렇다. 내로남불 -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준말이다. 

1990년대 정치권에서 유래한 뒤 현재까지도 오프라인과 온라인 상 모두에서 쓰이고 있는 말이다. 주로 남이 할 때는 비난하던 행위를 자신이 할 때는 변명을 하면서까지 합리화하는 모습을 지칭하는 말로 '남에겐 엄격하나 자신에겐 자비로운 태도'(자기합리화)를 일컫는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최근 이 단어를 공식석상에서 여러차례 사용했다. 과거 민주당이 야당일 때는 지금의 여당 인사들도 박근혜 정부를 향해 수도 없이 사용했던 단어이기도 하다. 나 대표는 청와대가 김태우 전 특별감찰반 파견 직원에 대해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장을 제출한 것과 관련해 "내로남불의 전형"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그는 "다양한 내부 고발자에 대해서는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용감한 행동이라고 추켜세우더니, (김 전 특감반원에 대해서는) 범법자라고 한다"고 주석을 달았다. 

설악산과 한라산 어느 꼴짜기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약수도 모자라 방방곡곡 청렴과 도덕성의 함량이 높다는 약수라면 어디든 찾아가 온몸을 씻어왔다는 진보정권의 이름난 참모들이 줄줄이 민낯을 보인 것은 오래된 이야기다. 

청문회만 열면 말간 얼굴의 진보 인사들은 금방 고개를 숙이고 과거의 관행이라거나 잘못은 인정하지만 전 정권의 잣대에 비하면 한없이 작은 실수였다며 그냥 넘어가 달라고 말 줄임표를 부여잡는다. 운동권으로 내공을 쌓아 도덕과 윤리는 자격증 없이도 강의 할 수 있다는 인사들이 이 정도까지 추악한 민낯을 보일 수 있을까 싶지만 권력 앞에 체면이나 과거따위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모양이다. 

음주운전이 세상의 이슈가 돼 대통령까지 언성을 높였지만 청와대 비서관은 아랫사람들 데리고 나가 호기롭게 뻘건 얼굴로 핸들을 잡았다. 한 때 열렬한 좌파 의원이었던 모씨는 스스로 음주운전 처벌 강화법안에 서명해 놓고 그날 밤 핸들에 알콜을 발랐다. 그리고는 멋쩍은듯 뒷통수를 긁적이며 의원회관에서 사과하고 법안 통과 때는 유인물까지 돌렸다. 

가까운 내로남불의 사례에 불과하지만 지금 좌파정권의 민낯은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하고 엄청나다. 더 이상 놀랄 일도 없지만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 후보자들이 청문회에서 보여준 유체이탈 화법은 오래도록 사초에 남을 이야기다. 

다운계약서나 위장전입은 기본인 자들이 다른 이의 비슷한 위법에 엄벌을 내린 모순이 속속 드러나기도 했다. 어떤 재판관은 한두번이 아니라 6차례나 위장전입을 하고 가짜 계약서까지 만들어놓고도 사업부에 희망을 끈을 놓지 말아달라는 문장을 말간 얼굴로 국민들 앞에서 주절거렸다. 교육의 수장은 스스로 비교육적이고 비도덕적인 행위를 해온 사실이 드러났지만 '그 때는 어쩔수 없었다, 친정부모의 잘못된 결정이었다'는 이야기로 묻혀가길 원했다. 특목고나 자사고 죽이기에 앞장서는 인사들이 자신들의 자녀들은 없애야 하는 학교를 보냈고, 투기꾼들을 잡아 부동산을 안정시키겠다는 인사들은 모조리 여러채의 아파트를 가진 임대업자였다. 그런데도 정권의 핵심은 도덕적으로 떳떳하단다. 

급기야 청와대 대변인이라는 자는 대놓고 유전인자 운운하며 항의라도 하면 멱살잡고 유전자 검사를 해보자고 할판이니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민간인 사찰 의혹에 휘말렸다. 전직 수사관의 폭로전 때문이다, 

야권은 즉각 특검도입을 내비치며 내로남불 정권이라며 비난의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지만 여권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불끄기에 바쁘다. 

민주당에서는 전방위적으로 비리 수사관의 일탈 행동을 야당이 정치공세화 하고 있다고 이야기 한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야당이 국회 운영위 소집 및 국정조사, 특검 등을 언급하는데 대해 정치적 공세라고 정색을 했다. 홍 원내대표는 "지금 특감반원이 자기 비위를 덮기 위해 폭로전을 하고 있고, 대검찰청에서 감찰단 조사를 하고 있으니 그것을 보고 해야되는 게 아니냐"며 "범죄자 얘기에 근거해 공당이 그런 식으로 하면 되느냐"고 도리어 삿대질을 하고 있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이야기다. 내로남불이다. 우리의 정치는 여야만 바뀌었을 뿐 흐름과 양상은 언제나 데자뷰를 연출하고 있다. 청와대 대변인이 이야기 한 것처럼 일부의 일탈에 불과하고 확대 재생산은 정치공세에 불과하다고 하자. 청와대 명찰을 단 이들의 일탈이 왜 정권의 초창기에 불쑥불쑥 튀어나오는지는 다른 문제다. 

산책길에 개를 데리고 다니는 주인이 개를 통제하지 못하면 개망신을 당한다. 각종 예방주사를 소홀히 하고 사람에게 달려들어 물어뜯는 것부터 길바닥에 함부로 배설을 저지르는 일까지 평소에 단단히 잡아두지 않은 상태로 길거리에 나선 개는 주인의 뒷배를 믿고 날뛰기 마련이다. 물어뜯고 짖어내고 함부로 싸 갈기는 행패는 통제 대상을 넘어서기 십상이다. 

한 해를 보내며 대한민국 사람들이 자신의 상황을 가장 잘 표현하는 사자성어를 찍었다. 

1위는 일이 많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의미의 '다사다망'(多事多忙)이 차지했다. '말라 죽은 나무와 재처럼 의욕이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고목사회'(枯木死灰)가 그 뒤를 이었다. 이어 '노이무공'(勞而無功), '각자도생'(各自圖生), '전전반측'(輾轉反側)이 근소한 차이로 각각 3, 4, 5위에 올랐다. '각자 살길을 찾아 간다'는 의미의 '각자도생'과 '걱정이 많아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전전반측'이 상위권을 차지한 것을 보면, 올해 많은 국민들이 힘든 삶을 살아왔음을 짐작케 한다. 

자영업자들은 불편한 현실을 반영하듯 '애만 쓰고 보람이 없다'는 뜻의 사자성어 '노이무공'을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았다. 구직자들이 뽑은 이색 사자성어도 있다. '입사 서류 시험부터 빛의 속도로 탈락한다'는 자조적 의미의 '서류광탈'이 눈에 띠기도 했다. 공정하지 못한 사회, 금수저 논란의 뿌리깊은 불신이 반영된 사자성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이 모든 사자성어를 덮고 최고에 오를 네글자는 아무래도 내로남불이지 싶다. 

최순실이라는 보살같은 자를 장자방으로 숨겨둔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5년 교수사회로부터 혼용무도한 지도자로 삿대질을 당했다. 억울할 것도 없는 냉엄한 비난이었다. 혼용무도는 세상이 어지러워 도리가 없어진 무도한 사회의 리더를 이야기 하는 것으로 스스로 부끄러움을 모르는 박근혜 전대통령에게는 오히려 부드러운 은유였다. 

당시에는 모든 게 박근혜 때문이다. 나라망신에 경기침체 모두가 박근혜의 무능과 보수우파의 패거리 정치가 손가락질의 대상이었다. 오죽했으면 지금의 여당인 민주당은 아직도 박근혜 정부의 무능을 정권의 방패막이로 이용할 만큼 그 약성은 제법 진한 모양이다. 

최근에 있었던 강릉 열차 탈선이나 각종 대형사고는 어김없이 '이명박근혜탓'이라는 이야기가 아직도 유효하다고 믿는다. 출범 3년차를 바라보는 정권이 과거정부에 책임을 묻는 일은 낯 뜨겁다. 내로남불이 일상화된 사회여서 그런지 내탓보다 남탓이 익숙한 시대다. 책임질 줄 모르는 사회는 엉덩이가 빨갛다. 얼굴은 분칠로 가려서 부끄러움을 감추지만 아무도 볼 수 없는 엉덩이는 언제나 빨갛게 변색해 부끄러움이 유전인자조차 바꿔놓았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둘로 갈라진 사회다. 통합과 화합을 이야기하고 소통을 이야기 하지만 갈라진 두쪽의 중심부엔 멸시와 조롱이 형용사와 관용어로 치장한 채 숨어 있다. 어설프게 소통을 이야기 하고 화합을 아야기 하지 말자. 그냥 두쪽을 인정하고 서로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그 바라봄에서 얻게 되는 서로의 틈과 상처를 지적하고 제대로 바라보는 게 오히려 약이 될 수 있을것 같아 해 보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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