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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딕'에는 고래고기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2등 항해사 스터브는 흑인 조리장이 향유고래 고기를 너무 연하게 요리했다고 질책하는 대목도 나온다. 향유고래 고기는 지방이 없어서 스테이크로 구워 먹으면 별미라고 말하는 대목도 있다. 고래고기 식용의 역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래됐다는 증거로 회자되는 근거다.

고래고기를 식용으로 즐기는 문화에 집착이 강한 일본이 식용 고래잡이를 재개하기 위해 국제포경위원회(IWC)에서 탈퇴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일본은 IWC 탈퇴 이후 일본 근해나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고래잡이에 나설 방침이어서 우리 동해와 남해에서도 일본의 고래잡이가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IWC에서 탈퇴하기로 하자 국제적인 비판이 거세다. 호주와 뉴질랜드 등 고래잡이를 반대하는 국가들은 성명을 내고 일본에 대한 비난을 이어가고 있다. 일본과 함께 한 때 고래잡이 대국으로 불린 아이슬란드와 노르웨이도 일본의 상업적 포경을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국제동물보호단체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HSI)'은 "일본이 국제법의 범위를 완전히 벗어나 고래를 죽이는 해적 포경 국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고래잡이 하면 떠오르는 곳이 있다. 바로 울산 장생포다. 장생포 고래잡이 역사는 역사 이전 반구대 암각화의 기록부터 이어지지만 실질적인 상업포경은 1891년부터다. 러시아 황태자 니콜라이 2세가 울산에 태평양어업 주식회사를 설립한 이후 방어진과 장생포에서 포경이 시작됐지만 러일전쟁 직후 일본이 한반도에 있는 포경기지를 정비하면서 장생포가 포경업의 중심지가 됐다.

일본의 고래 식문화는 오래된 전통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고래고기로 식량난을 견뎠다. 1962년 일본 내 연간 고래고기 소비량은 23만 톤에 달할 정도로 식탁에 자주 올라왔다. 그러나 상업포경이 일시 정지된 1980년대 전반에는 4만 톤 수준으로 급감하기 시작했고 지난해엔 약 3,000톤(국민 1인당 연간 30g) 정도만 소비됐다.

일본 정부가 IWC 탈퇴를 추진한 것은 고래 식문화 전통이 강한 홋카이도(北海道)와 아오모리(靑森), 미야기(宮城)현 등을 지역구로 둔 자민당 의원들의 요구로 시작됐다. 특히 포경선의 거점이 있는 야마구치(山口)현과 상업포경이 번성했던 와카야마(和歌山)현은 각각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자민당 간사장의 지역구라는 점에서 일각에선 유력 정치가들이 자신의 지지기반을 의식해 추진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는 상황이다.

문제는 일본이 고래잡이를 재개할 경우 동해가 주무대가 된다는 점이다. 현재 전체 고래 중에서도 가장 심각하게 멸종의 위협에 직면한 종이 북대서양참고래와 북태평양참고래다. 북대서양참고래를 멸종 위기로 몰아 넣은 것이 서양인이라면, 북태평양참고래가 멸종 위기에 몰린 것은 일본인의 몫이다. 울산에 뿌리를 둔 동해의 귀신고래가 거의 씨가 마른 것도 바로 일본의 만행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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