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지방교육 산실, 울산향교·언양향교
조선시대 지방교육 산실, 울산향교·언양향교
  • 강현주
  • 승인 2019.01.03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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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주 문화부 기자
울산 유형문화재 제7호 울산향교.
울산 유형문화재 제7호 울산향교.

조선시대 지방 교육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향교. 고을마다 설치된 향교는 공자와 여러 유학자를 모셔 제사를 지내고 지방 유생들을 교육시키는 공립학교로 자리 잡았다. 향교 건물은 문묘와 학당으로 나뉜다. 문묘에는 공자를 중심으로 중국의 사성(四聖)·이현(二賢)과 우리나라 십팔현(十八賢)을 모신 대성전과 동·서무가 있고, 학당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강의실인 명륜당(明倫堂), 기숙사인 동·서재로 구성된다.

울산 유형문화재 제7호인 울산향교(중구 명륜로 117)는 창건 연대나 초기 연혁 기록이 임진왜란으로 멸실돼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한 고을 한 향교 체제가 완성된 15세기쯤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창건 당시에는 신학성 북쪽인 현 반구동 구교(舊校)마을에 세워졌는데, 임진왜란 때 불탄 후 그곳에 다시 세워졌다가 1652년(효종 3)에 지금 장소로 옮겨 세웠다.

당시에는 대성전, 동·서무, 동·서재 등 향교의 핵심시설만 세워졌다가 1711년(숙종 37)에 문루 5칸을 창건해 작신루라고 편액했다. 작신루는 1796년(정조 20)에 청원루로 바뀌어 오늘까지 전해져온다. 1800년 이후 26번이나 고쳤으나 배치의 기본 틀은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주요 건물들은 남북과 동서축으로 직각 교차하게 배치해 전형적인 향교 건축의 특성을 살렸다. 각 건물도 전통 건축양식을 잘 보여 주며, 대성전은 정면과 측면이 모두 3칸인 홑처마 익공양식의 팔작지붕 형태를 띤다. 정문인 청원루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겹처마 익공양식의 팔작지붕 형식을 하고 있다.

울산 유형문화재 제8호 언양향교.
울산 유형문화재 제8호 언양향교.

유형문화재 제8호 언양향교(울주군 삼남면 서향교1길 53)는 본래 반월산 아래 창건됐다고 전한다. 그 뒤 현재 위치로 이전됐다가 다시 화장산 아래로 옮겼고, 마지막으로 현 위치로 재이전했다. 1696년(숙종 22)에 도유사 김정하가 현재의 위치로 이전할 때 대성전 일곽만 우선 건축했으며, 1700(숙종 26)에 명륜당과 동·서재를 세웠다. 그 뒤 1859년, 1870년, 1900년에 중수한 기록이 있다.

1900년까지는 대성전, 명륜당, 내신문, 양재 뿐 아니라 현재에 없는 양무와 경각(經閣)이 있었다고 한다. 언양향교는 일반적인 지방향교의 배치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대성전 축과 명륜당 축이 어긋나 있고, 동·서무가 없다. 대성전은 정면과 측면이 모두 3칸인 겹처마 익공 양식의 맞배지붕집이다.

대성전에서 특이한 부분은 주조(柱礎, 땅 위에 놓아 기둥을 받쳐주는 구실을 하는 것)이다. 따로 분리된 방형 및 불규칙한 주좌 받침 위에 거칠게 다듬은 원형 주초를 뒀다.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5칸의 건물로서 중앙에 3칸의 대청과 좌우 한 칸 씩 온돌방을 뒀으며, 각 방 앞으로는 퇴칸을 뒀다. 지붕은 익공양식의 팔작지붕이며, 부연이 없는 홑처마의 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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