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유가에 힘입어 초호황을 누려왔던 정유화학업계에 다운사이클 경고등이 들어왔다. 유가 급락이라는 복병에 발목이 잡히는 바람에 재고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적자 전환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산업계에서는 조선, 자동차에 이은 '장치산업의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고, 업계는 연초부터 돌파구 찾기에 사활을 거는 모습이다.

# 정유업계, 비정유사업 확대 돌파구 모색
7일 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 S-OIL,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4사의 정제마진이 지난해 4분기부터 급락하면서 사상 첫 총 영업이익 8조 원 돌파가 사실상 무산된 상태다.

증권사들은 통상 손익분기점보다 2달러 가량 낮은 수준까지 하락한 정제마진의 영향으로 정유사들이 4분기 고배를 마실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기업별 4분기 영업이익은 SK이노베이션은 올 3분기 대비 81% 줄어든 1,609억 원, S-OIL도 같은 기간 88.7% 줄어든 419억 원으로 예상되고 있다. 앞서 3분기까지만 국내 정유업계는 사상 첫 총 영업이익 8조 원 돌파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다.

SK이노베이션은 3분기까지 2조 3,991억 원의 영업이익을 내면서 3년 연속 3조원 달성을 내다봤다. S-OIL은 3분기에 지난해 동기 대비 좋지 않은 성적표를 받았으나, 2분기에 지난해 동기 대비 240%가 넘는 실적 개선에 성공하면서 목표 달성에 힘을 보탤 것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4분기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지난해 10월 4일 배럴당 84.44달러로 연간 최고가를 기록했던 두바이유는 두달 여 만인 12월 26일 배럴당 49.52달러로 연간 최저가로 추락했다. 두달 여 만에 41.4%가 하락한 것이다.

이 바람에 정유업계는 수천억 원대 재고평가손실이 불가피해졌다. 정유업계의 가장 큰 걱정은 경기 둔화에 따른 수요 감소다. 정유업계 수익성을 나타내는 척도인 싱가포르복합정제마진은 12월 평균 2.8달러에 그쳤다. 국내 정유사의 경우 복합정제마진이 4~5달러 이하로 하락할 경우 적자를 보게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올해 국제유가가 안정화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라는 점이다. 글로벌 경기가 미·중 무역분쟁으로 인해 한동안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국내 정유사는 이전부터 이에 대비해 비정유사업 부문에서 타개책을 모색해왔다. 특히 산업 연관성이 크고 미래 성장 가능성이 높은 석유화학사업에 진출함으로써 포트폴리오 다변화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글로벌 종합 에너지·화학기업'을 표방하며 오는 2020년까지 배터리·화학 등 비정유사업에 10조 원을 투자할 방침이다. 지속적인 포트폴리오 재편을 통해 수익구조의 혁신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겠다는 복안이다. SK이노베이션은 내수 시장이 급격히 커지고 있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소비지 중심 생산 능력을 확보하고 고부가 분야인 포장재 및 자동차 용 화학제품을 중심으로 화학사업의 구조를 바꾸기로 했다. 이를 통해 SK종합화학을 글로벌 10위권의 화학 기업으로 도약시킨다는 청사진도 내놨다.

S-OIL은 석유화학부문 파이를 늘려 정유부문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을 핵심전략으로 삼고 있다. S-OIL은 지난 3분기에 전체 영업이익의 16.4%를 차지했던 석유화학부문 비중을 32.3%까지 끌어올렸다. 지난달 가동에 들어간 울산 잔사유고도화시설(RUC)과 올레핀다운스트림시설(ODC) 실적이 반영되기 시작하면 이 비중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 화학업계, 해외 진출 등 생존 전략
한화케미칼, 롯데케미칼 등 화학업계는 올해 업황에 대한 우려가 더 크다. 업계 특성상 전방산업인 정유업계가 부진할 경우 직접적인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유가하락은 정유업계는 부정적으로, 화학업계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이번 유가하락처럼 수요 둔화와 공급 과잉이 맞물리면 화학업체들도 제품가격 하락 압박이 커지는 등 부정적 영향을 받는다.

가뜩이나 석유화학업계는 화학 산업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 때문에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석유화학 업계의 호황을 이끌어온 에틸렌의 가격이 급락하고 있어서다. 한국석유화학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7월 1t당 1,386달러였던 에틸렌 가격은 같은 해 12월 800달러대를 보이며 30% 넘게 하락했다. 여기에 에틸렌의 공급 과잉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당장 올 상반기부터 미국 에탄크래커(ECC) 업체와 중국 화학업체의 에틸렌 추가 생산이 본격화되고, 국내에서도 ECC 공장 증설이 예고돼 있기 때문이다. 미국 ECC 기반 에틸렌계 제품의 경우 운송비를 포함하더라도 아시아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 확보가 가능해져 한국 및 아시아 석유화학 시장의 위협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최대 수출시장인 중국의 글로벌 수입 물량이 감소하는 것도 불안감을 키우는 요인 중 하나다.

이미 정유업계로부터 '영역침범'을 당한 석유화학업체들은 사업 다각화와 신사업 발굴, 해외 진출 등 생존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적극적인 해외 진출이 성장 전략의 핵심이다. 이를 통해 시장 확보는 물론 원료 다변화를 통한 리스크 대응도 가능하다. 올해 가동 예정인 미국 루이지애나 에탄크래커분해시설(ECC), 우즈베키스탄 가스전 개발과 울산과 여수공장 증설이 대표적이다. 루이지애나 ECC에서는 연간 100만t의 에틸렌과 70만t의 에틸렌글리콜(EG)을 생산할 예정이다.

LG화학은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통해 실적 개선을 노리고 있다. 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기초소재와 이차전지, 생명과학사업 등 사업 다각화를 성장전략으로 삼았다. 특히 주력 사업인 기초소재와 더불어 전지, 바이오 부문을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기초소재에서 손해를 봐도 이차전지로 메운다는 방침이다. 한화케미칼은 증설투자와 신사업 발굴로 성장동력 확보에 힘쓰고 있다. 한화그룹 차원에서 한화케미칼의 주력사업인 태양광에 5년간 9조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지역 석유화학협회 관계자는 "그동안 정유, 석유화학업계가 몇 년간 누려온 '슈퍼사이클(초호황)'이 끝나고 '다운사이클(불황)'로 접어들게 되리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며 "울산의 경우 조선과 자동차가 부진을 겪을 동안 정유화학업계가 지역 경제의 기둥 역할을 해온만큼, 이들 업계의 실적 하락이 불가피해지면 경기 반등이 더욱 어려워 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주화기자 usjh@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