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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시간을 거슬러 가보자. 지난 19대 대선 직전 TV 토론 현장이다. 유승민 당시 대선 후보가 목청을 높였다. "문재인 후보께 묻는다. 북한이 우리의 주적입니까" 그러자 당시 문 후보는  "대통령이 될 사람이 할 말이 아니라고 봅니다. … 대통령은 남북관계를 풀어나갈 사람입니다" 그러자 유승민 후보가 발끈했다. "정부 공식 문서에도 북한이 주적이라고 나옵니다. 대한민국 군 통수권자가 북한이 주적이라 말하지 못하면 됩니까"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문 후보가 답했다. "유승민 후보도 대통령이 되면 남북간 문제를 풀어가야 될 입장입니다. 필요할 때는 남북정상회담도 필요합니다. 국방부가 할 일이 있고, 대통령이 할 일이 따로 있습니다."

당시 대선 후보들의 TV 토론회는 '주적' 개념을 두고 설전이 벌어졌다. 이 단어는 바로 '국방백서'에 등장한 용어다.
올해 발간된 국방백서에 '북한은 적'이란 표현이 공식 삭제됐다. 그간 북한을 자극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던 '킬체인(Kill Chain)·대량응징보복(KMPR)'이란 용어도 국방백서에서 사라졌다. 또 북한군은 요인 암살 작전을 전담하는 특수작전대대를 창설했고, 특수전 부대의 위상 강화를 위해 '특수작전군'을 별도로 편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방부는 15일 이런 내용을 담은 '2018 국방백서'를 발간했다고 밝혔다. 1967년 이후 23번째로 발간된 국방백서는 2016년과 동일한 총 7장의 본문으로 구성됐다. 먼저, 백서에서는 북한 정권과 북한군을 우리의 적으로 표현했던 문구가 삭제됐다. 백서는 이와 관련 '우리 군은 대한민국의 주권, 국토, 국민, 재산을 위협하고 침해하는 세력을 우리의 적으로 간주한다'고 표기했다. 북한을 특정하지 않고, 모든 위협·침해 세력을 적으로 광범위하고 포괄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국방백서에 북한이 '적'으로 명시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지난 1994년 남북 실무 접촉에서 '서울 불바다' 발언이 나온 다음부터였다. 그러다가 참여정부 시절인 2004년 국방백서에는 '직접적 군사위협'으로 표기했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8년 국방백서에서는 '직접적이고 심각한 위협'이라는 표현이 들어갔다. 이후 북한이 연평도를 포격한 2010년 발간한 국방백서부터 우리의 적으로 표현하는 문구가 들어갔다.

이번에 발간한 국방백서를 보면 북한군은 병력과 전략무기 등의 분야에서 우리 군보다 양적으로 우위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북한이 6차례 핵실험을 통해 '핵능력이 고도화'된 것으로 평가됐으며, 단거리(SRBM)·준중거리(MRBM)·중거리(IRBM)·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14종의 각종 미사일을 개발했거나 보유한 것으로 국방부는 분석했다. 백서는 또 북한 핵능력과 관련해서는 '일반부록'에 별도로 표기했는데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 제조 가능 플루토늄을 50여 ㎏으로 추정했다. 그런데도 주적이라는 용어는 과감하게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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