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마지막 공주
조선 마지막 공주
  • 김진영
  • 승인 2019.01.17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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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편집이사 겸 국장

영정조 시대가 끝나고 세도 정치가 조선의 국운을 저물게 할 무렵 비운의 왕 순조의 시대가 시작됐다. 순조는 정실 순원왕후와의 사이에 1남 3녀를 뒀다. 그 첫째가 효명세자(孝明世子)로 몇해전 사극 '구르미 그린 달빛'의 주인공이다. 공주로는 명온공주(明溫公主), 복온공주(福溫公主), 덕온공주(德溫公主)가 있었는데 이 가운데 덕온공주가 최근 화제의 중심이 되고 있다.

이 덕온공주가 바로 조선의 마지막 공주다. 덕온공주(1822~1844)가 아버지 순조의 글을 한글로 옮겨 쓴 자경전기(慈慶殿記) 등이 미국에서 돌아왔다. 덕온공주 집안의 책과 편지, 서예작품 등 3대가 한글로 쓴 왕실 유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서울 용산에 자리한 국립한글박물관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수집한 조선 왕실 한글 유물 68점을 문화재청으로부터 이관받아 지난 16일 공개했다. 조선 왕실의 한글문화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귀한 자료들이다. 미국에 거주하는 덕온공주 후손들이 소장해온 것으로, 국립한글박물관과 문화재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협력해 매입한 뒤 국내로 들여왔다. 이번에 국립한글박물관으로 이관된 유물 중 가장 중요한 자료로 주목받은 것은 조선 마지막 공주인 덕온공주의 친필을 담은 자경전기와 규훈이다.

이 두 책은 모두 본래 한문으로 쓰여 있던 것을 덕온공주가 우리말로 옮겨 쓴 것이다. 자경전기는 효(孝)를 중시했던 조선 왕실문화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1808년 순조가 어머니 효의왕후의 뜻을 받들어 창경궁 자경전에 관해 쓴 책이지만, 그 시작은 정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효심이 지극했던 정조가 1777년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창경궁의 양화당 옆에 전각(현재는 터만 남아 있다)을 짓고, 이를 자경전이라 이름 지은 것. 자경(慈慶)은 자전(慈殿, 임금의 어머니)의 장수를 기원하는 뜻을 담고 있다.

조선 왕들은 정실 부인인 왕비 외에도 수많은 후궁들을 거느렸는데 이들이 낳은 자식들은 그 호칭이 달랐다. 왕의 본 부인인 왕비가 출산한 아들은 대군이 되었고, 대군을 봉작하는 연한은 따로 없었다. 적당한 시기에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비해 왕의 후궁이 낳은 아들은 군이 되었는데 7세에 봉작됐다. 또 왕비의 소생인 공주와 후궁의 소생인 옹주 역시 대군과 마찬가지로 봉작하는 연한이 따로 없었다. 왕자의 봉호는 어머니가 정비이냐 후궁이냐에 따라 대군과 군이었고, 왕녀의 봉호는 공주와 옹주로 불리었다. 그리고 세자의 딸은 군주와 현주로 불리웠다.

조선시대의 공식적인 공주는 41명으로 가장 많은 공주를 낳은 임금은 효종이다. 효종은 인선왕후 장 씨와의 슬하에 7명의 공주를 뒀다. 우리가 흔히 조선의 마지막 황녀로 알고 있는 덕혜옹주는 조선의 제26대 임금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였던 고종과 귀인 양씨 사이에서 태어난 고명딸로 귀인과의 사이에 태어나 공주라는 칭호를 얻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