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시대 불교문화 꽃 피우다- 율리 영축사지
통일신라시대 불교문화 꽃 피우다- 율리 영축사지
  • 강현주
  • 승인 2019.01.17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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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주 문화부 기자
율리 영축사지 발굴조사 전경.
율리 영축사지 발굴조사 전경.

울주군 청량읍 율리 822 일대에 위치한 기념물 제24호 율리 영축사지(靈鷲寺址). 통일신라시대 절터인 영축사지는 영축산, 문수산, 남암산 등의 산등성이와 구릉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영축산 자락의 말단부 평지에 위치한다.

영축사지 주변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사찰인 망해사지와 청송사지가 1㎞ 내외의 거리에 있어, 이 일대가 통일신라시대 울산 불교문화의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다. 영축사의 창건 유래는 '삼국유사'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683년(신문왕 3), 온천에서 목욕하고 돌아오던 재상 충원공(忠元公)은 꿩이 매에게 쫓겨 굴정현(屈井縣) 현청(縣廳) 북쪽 우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꿩은 날개를 벌려 새끼 두 마리를 감싸고 있고, 또 매는 이를 잡지 않는 것을 보고 감동해 절을 세울 만한 곳이라 여겼다. 이를 왕께 아뢰어 현청을 옮긴 뒤 그 곳에 절을 세웠다고 한다.

영축사지는 '영축'명 기와가 채집되고 지리적 정황 기록과 일치해 영축사터로 주목을 받아 왔다. 통일신라시대 양식의 삼층석탑 부재가 동서로 무너진 채로 존재하고, 남쪽에는 귀부(龜趺)가 확인됐으나, 논밭으로 이용되고 있어 보존정비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었다. 이에 울산박물관은 2012년부터 연차 발굴계획을 수립해 정밀 학술발굴조사를 실시했다.

영축사지 출토 유물.
영축사지 출토 유물.

발굴조사 결과 영축사지는 통일신라시대 전형적인 쌍탑일금당식의 가람배치임이 확인됐다. 동·서탑은 동일한 구조의 삼층석탑으로 동탑 복원도가 만들어졌는데, 상륜부를 제외한 탑신의 높이는 6.1m이며 형태상 경주의 천군리사지 석탑과 불국사 석가탑과 많이 유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동·서탑을 연결하는 동서축 중앙 북쪽에는 금당지가 자리 잡고 있으며, 금당지와 같은 남북 중심축에는 중문지, 석등지, 강당지가 일직선상으로 배치된다.

회랑은 중문 좌우에서 연결되는 남회랑과 동서회랑이 금당과 동서 쌍탑을 자상으로 감싸고도는 배치로서 중심 가람과 외부를 엄격히 구획하고 있다. 강당으로 연결되는 북회랑은 존재하지 않으며, 강당 좌우에는 승방지로 추정되는 2실 1동의 강당부속건물지가 배치돼 있는 것이 확인됐다.
이러한 가람배치는 경주의 천군리사지, 불국사 등 왕경사원과 유사한데, 신라왕경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사원인 영축사지의 사격의 높이를 탑의 형태와 함께 가람배치에서도 잘 말해주고 있다.

유물은 통일신라에서 고려시대로 편년되는 다양한 기와와 함께 비석편, 석등, 석조여래좌상과 광배 등의 석제유물, 금동불상, 각종 철기, 청동 향로 등의 금속제 유물이 출토됐다. 이 중에서 청동제 향로, 시루, 바리는 동탑 동북 모서리에서 탑구에서 2m 떨어진 거리에 일괄로 매장돼 있었는데, 영축사와 관련된 지진구로 추정되며, 모두 고려전기(11~12세기)의 것이다.

이들 유물은 출토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몇 안 되는 유물 중에 하나로서 특히 시루는 우리나라에서 연대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판명돼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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