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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실리콘밸리도 뉴욕 같은 대도시가 아니었지만, 전 세계 젊은이가 몰려오잖아요? 울산도 천혜 자연과 기후, 수십 년 만에 압축성장한 저력이 있습니다. 젊은 층도 매력을 느끼도록 그 저력을 세련되게 덧씌우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지난 16일 만난 정융기 울산대병원장(사진)은 '탈울산 행렬'에 대한 묘약은 "없다"고 단언했다. 인구가 순유출되는 '탈울산 행렬'은 △2015년 12월 80명에서 △2016년 7,622명 △지난해 1만 2,652명 등 37개월째 3만 2,273명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 병원장은 "그동안 정치, 경제, 학계 등 여러 분야에서 백가쟁명식 해법이 나왔지만 딱히 성과를 본 게 없다"며 "정파나 인물을 떠나 시민 모두가 공통의 문제 의식을 갖고 서서히 나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 병원장은 울산이 1962년 공업센터지정 이후 수십 년간 급속하게 외형적으로 성장했지만, 남의 성공을 따라하기 급급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남구 신화마을의 경우 부산 산복도로 등 성공한 도심재생을 벤치마킹했지만 정작 울산 시민들도 잘 찾지 않는 곳이 됐다. 타도시 정책을 카피하는 것엔 영혼이 없다. 울산만의 자산을 긴 호흡으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 병원장이 울산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여년 전. 1998년 서울에서 전공의 수료를 마치고 내려와 가정을 꾸린 게 시작이었다. 그는 "외부에서는 울산하면 여전히 거친 산업도시의 이미지, 돈 벌러 잠깐 왔다가 살고 가는 곳이란 인식이 있다. 그러나 나처럼 이곳에서 오래 산, 주변에 은퇴를 남겨둔 교수들을 보면 울산만한 데가 있냐고 하시는 분도 많다"고 말했다.

문제는 젊은 청년들이다. 정 병원장은 "젊은 사람들이 꿈을 찾아 올만한 매력적인 도시가 되기엔 부족하다"며 "중공업만 해도 연구 설계직 등 고급 두뇌들은 잘 오지도 않고, 정착이 잘 안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시민 모두 부족한 애향심과 자부심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 병원장은 "최근엔 정보 불균형이 많이 해소 돼 의학의 경우 특수한 질병이나 치료법이 아니면 기본적인 대응매뉴얼이 비슷하다. 그러나 막연히 서울로 원정 진료를 가는 분이 아직도 많다"고 말했다.

그는 "시민들을 보면 가장 부족한 게 애향심과 자부심인 것 같다. 그러나 울산은 산업도시로서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끈 심장이다. 우리가 가진 걸 소중히 가꿔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물론 병상 수, 의사 수가 부족한 지역의료를 개선하기 위해선 지자체 힘만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은 동의했다. 정 병원장은 "의료서비스가 개선될수록 인력은 더 요구되는데, 전국의 전공의는 오히려 과거 4,000여 명에서 3,400여 명으로 감축했다. 게다가 의사들은 점점 수도권으로 가려고 한다. 의대의 배출 인력을 늘리거나 지역에 할당되는 전공의 수가 늘어야 하지만, 오히려 인원이 줄어드니 의료질을 높이기 힘든 것"이라고 지적했다.

울산의 경우 1년 차당 필요한 전공의 수는 70명이지만, 실제는 30여 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지역별로 전공의 수를 배치하는 것은 국내 주요 대형병원 등 기득권층에 대한 '쿠데타'급 조치 없인 불가능에 가깝다고 했다.

정 병원장은 "전공의가 해당지역에서 배출돼야 그를 바탕으로 인적 네트워크도 형성돼 의료 생태계 전반이 살아난다"며 "지자체나 정부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영역이라 가장 안타까운 부분"이라며 아쉬워했다.

그러나 전반적인 분야에서 울산은 여전히 잠재력이 큰 도시라고 평가했다. 그는 "서울·수도권은 점점 옴짝달싹 못하는 곳이 됐지만, 울산은 운신이 자유롭다. 120만 도시에 걸맞게 분야별로 속속들이 가장 잘 합리적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을 갖추고, 열심히 하면 서서히 시민들의 자부심과 애착이 생기고, 도시 경쟁력도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주영기자 uskj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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