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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를 들으며

김성춘

안경알을 닦으며 바하를 듣는다.
나무들의 귀가 겨울쪽으로 굽어 있다.
우리들의 슬픔이 닿지 않는 곳
하늘의 빈터에서 눈이 내린다.
눈은 내리어 죽은 가지마다 촛불을 달고 있다.
聖 마태 수난곡의 一樂句.
만리 밖에서 종소리가 일어선다.
나무들의 귀가 가라앉는다.
今世紀의 평화처럼 눈은 내려서
나무들의 귀를 적시고
이웃집 그대의 쉰 목소리도 적신다.
불빛 사이로
단화음이 잠들고
누군가 죽어서 지하층계를 내려가고 있다.

△김성춘: 1942년 부산 생, 1974년 '심상'지 첫 신인상 등단(박목월 박남수 김종길 추천), 제1회 울산문학상, 경상남도 문화상, 제2회 월간문학 동리상 수상, 울산대 사회교육원 시창작과 지도교수 역임, 동리목월 교학처장 및 편집장, 시집 <물소리 천사> <온유>외 11권 출간.
 

한영채 시인
한영채 시인

다시 2019년 새해가 밝았다. 양정작은도서관 달팽이 상주작가로 온 지 2개월, 삶은 두 번의 기회가 아닌 하루하루 새로움의 연속이다. 울산에 살면서 양정동을 처음 머문 터라 1개월은 양정동 지리 익히기에 바빴고 또 한 달은 도서관에서 해야 할 프로그램 짜기에 하루가 꽉 찼다. 긴 터널을 지나 온 듯 지난해와 새해를 맞이하면서 고전읽기와 힐링 캘리그라피 그리고 시인과의 수다 시간을 만들었다. 고전읽기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선택했고 시인과의 수다는 주위 사람들과 시를 읽고 서로 보듬어 사랑을 나눴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그 중 캘리그라피는 인기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았다. 시인의 글(시)로 시화와 캘리의 접목이 재미있을 거라는 막연한 상상에 캘리그라피에 관심을 가졌다. 잠시 배워야지 했었는데 벌써 수년이 지나다보니 이렇게 양정 주민들과 함께 붓질 중이다. 양정 뒷산 오치골에 생강나무 꽃이 활짝 피기까지 진행될 것이다.


시월부터 양정작은도서관에 머물면서 가끔 틈이 날 때 양정동 뒷산 오치골 산책은 나의 유일한 건강 프로그램이다. 좁은 골목을 지나 동사무소가 있고 아파트를 건너 골짜기 입구가 보인다. 버드나무가 많았다는 골짜기 입구는 꿈꾸며 생각하는 정원이 있고, 골짜기엔 겨울 그늘이 을씨년스럽게 짙어 얼음아래 맑은 물이 졸졸 흐르고 있다. 그 옛날부터 까마귀와 꿩이 많아 오치(烏雉)골이라 명명 했다든가. 색 바랜 고춧대와 어린 남새들이 힘겹게 겨울을 견디는 텃밭에 접근금지라는 팻말이 생소해 보이기도하다. 조금 더 오르자, 때 아닌 개나리가 피어있고 아그배나무가 잎을 떨구고 붉은 열매를 달고 있다. 좀 더 일찍 올라왔더라면, 아니 좀 더 기다려야 넓은 잎을 볼 수 있겠구나. 골짜기 끝 성불사로 가는 길은 멀다. 만 리 밖에서 범종소리가 일어선다. 나무들의 귀가 가라앉는다. 김성춘 시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소나무는 추운 겨울을 잘 견디며 늠름하다. 저 솟구친 푸른 정신에 머리가 맑아진다. 은사시나무는 이름도 참 예쁘다. 암수가 딴 그루로 4월에 잎보다 꽃이 먼저 핀다고 한다. 공해에 강해 생장 속도가 빠르며 울산의 가까운 야산에 자주 보이는 나무다. 은사시나무 가까이 윤동주의 서시가 걸려 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사월이면 이 산엔 진달래가 피고 오리나무 곁에 김소월의 詩 '진달래'가 더 빛을 발하며 서 있을 것이다. 맑은 물소리를 듣는다. 바하를 듣는다. 나무들의 귀가 겨울쪽으로 굽어 있다. 1월 달팽이의 걸음으로 한 해를 시작한다. 김성춘 선생님의 詩를 생각하며 오치골을 내려온다. 
 한영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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