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애들이랑 눈 마주칠 시간 좀 있었으면 좋겠어요!"

수어 년 전,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이뤄지는 일상 속에서 선배 교사들에게 볼멘소리를 했던 기억이 있다. 출근과 동시에 아침부터 산적해 있는 업무 메시지를 컴퓨터로 확인하느라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곤 했었다. 하나 둘 등교하는 아이들의 인사는 고작해야 "응, 그래"하고 받으며 시선은 줄곧 모니터와 오늘 할 일이 줄줄이 적힌 메모지에 있었다.

아이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잡아 본다. 다행히 요즘은 현장에서 보여주기 식의 형식적인 사업들이 점점 줄어가고 있는 고무적인 분위기도 느끼고 있다. 좀 더 많이 아이들과 눈을 맞추려 해 본다. 늘 제일 먼저 등교하는 아이에게 "오늘 아침은 무얼 먹고 왔니?"하며 하루 대화를 시작해 보기도 하고, 어제 열이 나서 조퇴했던 아이에게는 간밤에 열은 더 안 났는지, 오늘은 어떤지 찬찬히 물어보기도 한다. 일상 속의 사소하고 평범한 대화지만, 울림이 깊은 행복은 일상 속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맺음에서 나온다고 나는 느낀다. 그렇게 주고받은 작은 마음자락들이 하나하나 겹치고 모이면 교실의 하루가 더욱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감정 출석부와 감정카드'를 통해 서로의 마음 마주보기를 해보았다. 아이들은 자신의 이름 자석을 교실 한 곳에 마련된 감정 출석부판(신나다, 설레다, 슬프다, 걱정되다 등 50가지 감정 칸으로 구성)의 그날 해당되는 기분 칸에 붙이며 하루를 시작한다. 자석을 붙이며 혹은 다른 아이가 붙인 자석을 보며 이미 서로간의 대화가 한창이다. 출석부판 앞에 모여 주거니 받거니 몽글몽글 대화 꽃을 피워낸다. 이렇게 우리 교실에는 내 마음, 네 마음을 살피는 자리가 있다. 

1교시 시작 전 아침머리에는 모둠별로 나눠준 감정카드 중 하나를 골라서 서로 돌아가며 대화를 나눠보도록 한다. 몇몇은 자신의 현재 감정과 그 이유를 손들어 발표하게 한다. 그리고 그날의 특징적인(우울하다, 슬프다, 두렵다 등의 감정카드를 고른) 몇몇 아이를 좀 더 세심히 살펴본다. 나 역시 "오늘 선생님 기분은 ○○야. 왜냐하면~"하며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감정을 표현하고 공유한다. 

서로 마주보며 소통으로 함께 시작하는 하루는 다르다. 소외된 이 없이 눈을 맞추고 감정을 나누며 교감이 이뤄진다. 내 이야기를, 내 감정을 들어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는 아이들의 하루는 더 안정적이다. 덜 움츠러들며, 더 많이 표현한다. 덜 배타적이며, 더 품에 들어와 보듬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가르치며 배우는 나의 하루도 마찬가지다. 덜 채근하고, 더 포용적이다. 덜 경직되고, 더 온화해진다. 또한, 서로의 마음을 공유하고 살피면서 '우리' 라는 공동체의식(共同體意識)으로도 자연스레 이어진다.

'단 한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울산교육'이라는 우리 교육청의 슬로건은 학력 의미에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단 한 명의 감정도 놓치지 않으려는 사려 깊은 교육의 의미도 불어넣어 본다. 교육은 관심에서부터 시작되며, 관심은 눈맞춤으로 이뤄지고, 눈맞춤은 소통으로 이어진다. 눈맞춤과 소통 속에서 우리 아이들은 올곧이 온기 머금고 성장한다.

영문학과 교수이자 에세이스트인 故 장영희 교수는 <내 생애 단 한 번> 이라는 저서에서 말했다. '가르치는 일은 그들의 영혼을 훔쳐보는 일이고, 그래서 나는 그들의 영혼의 도둑이다. 그들의 젊고 맑은 영혼 속에서 나는 삶의 보람과 내일의 희망을 주는 글거리를 찾는다.'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며 시작하는 하루에서 그들의 영혼을 들여다볼 준비 태세가 이뤄진다. 눈을 마주치며 영혼을 들여다보는 그 속에서 삶과 희망의 가르침거리를 찾는다.

가르치는 일은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기에 보람도 있지만 겁이 나기도 한다. 오늘 그리고 바로 여기 서 있는 자리에서 내가 선택한 길을 믿으며 터벅터벅, 한발이라도 더 앞으로 나아가길 바랄 뿐이다.

오늘도 나는 교실 하루를 돌이켜본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과, 얼마나 깊이 있는 눈맞춤을 했는가?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