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옛 울주군청사에 다목적복합문화공간의 도서관을 세우겠다는 김진규 남구청장의 계획 발표는 황금돼지해를 맞은 시민들에게 모처럼의 낭보가 되었다. 도서관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울주군 웅촌 출신 엄대섭 선생인데, 이 낭보를 듣는 순간부터 나에게는 그가 다가와서 며칠이 되도록 내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

지금은 한국 도서관계 아버지라 불리고 있는 그가 유독 생각나는 까닭은 그토록 책 읽기를 권장하면서 독서운동을 벌이고 도서관 건립을 제창하던 그의 소망이 이제야 이루어지는가보다하는 반가움에서다. 입만 열면 책으로 시작해 도서관으로 말을 맺던 엄대섭. 그는 한국전쟁 이후 어수선했던 울산에서 미친 사람이란 소리를 들으면서 독서운동을 벌였다. 사설 도서관을 만들어 길가의 어린 학생들을 불러모으고, 책이 없어 독서에 목마른 집 대문을 한 밤중에 두드리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하늘도 이런 그에게 감복했음인가 그 후 같은 웅촌 출신의 이후락 대통령 비서실장의 적극 지원으로 그의 독서운동에 수확을 거두게 됐다. 또 울산 출신 고태진 조흥은행장 후원으로 마을문고의 창시자가 되기도 했다. 전국 각지에 책 보내기 운동으로 각계의 호응을 불러오자 육영수 여사가 이끄는 장·차관과 군 장성 부인 자선단체인 양지회가 주력사업으로 그를 도왔으니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엄대섭이 일구던 독서운동 위력을.

그러나 이렇듯 엄청난 후광 속에서 일을 하면서도 그는 털끝만치도 잡음을 일으키지 않았고 추호의 흠결을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그의 명성이 높아지고 있을 때 나는 처음으로 그를 만나게 됐다. 울산 MBC 정택락 전 사장이 대한통운 부사장으로 있을 때였다. 정 사장을 따라 서울 청진동 한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그때 곧 이후락이 들어서면서 같이 온 말끔한 차림의 신사 한 사람을 소개했다. 이 신사가 엄대섭 선생이었다.

이제 와 생각하면 인사를 시키시던 그 분도 크게 우뚝한 분이었지만 그도 그에 못지않은 인물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의 말쑥한 모습과 같이 사회에서 밝은 빛과 미래를 내다보았던 엄대섭은 어느 누구의 안목이 못따른 혜안을 가졌었다. 그는 새마을 노래 가사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를 "우리가 한 번만 잘 살고 말아야 합니까?" 하고는 "공장을 지으면 한 번쯤 잘 살지 모르지만 책을 읽고 도서관을 세우면 영원히 잘 사는 나라가 됩니다"고 힘주어 말하는 사람이었다.

첫 인사 이후 서울에서 두어번 그를 만났다. 또 한 번은 고향에 왔다가 나의 직장을 찾아왔었다. 훨씬 후배인 나를 기억하고 있었음은 아마도 첫 인사를 나누게 한 그 분 때문이기도 하지만 고향 후배들이 당신이 꿈꾸던 독서운동을 이어주기를 바래서였을 것이다. 그는 만날 때마다 한결같은 꿈을 들려 주었다. 그의 꿈은 고향 울산에 도서관같은 도서관을 세우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의 꿈을 하늘나라에서 실행하게 한 것일까? 울산에 드디어 도서관같은 도서관이 들어설 모양이다.

김진규 남구청장이 선거공약으로 내세웠던 공업탑 일대 스카이워크 사업을 백지화하면서 여타의 공업탑 일대 사업을 접은 대신 남부도서관을 옮긴다는 방침을 묶어 옛 울주군청사 자리에 현대식 도서관을 세우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범서읍 선바위도서관에 있는 엄대섭 흉상도 벌떡 일어설 소식을 새해 낭보로 띄운 것이다. 당초부터 글쎄라는 소리를 들었던 공업탑 스카이워크 사업을 과감히 백지화하는 결단을 내린 김 청장의 용단을 높이 사고 싶다. 또한 이 기회에 울산시립도서관을 향해서도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울산도서관 정덕모 관장이 울산에 산재해 있는 작은 도서관에 대한 운영 매뉴얼을 제작·배포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말 그대로 작은도서관이다보니 운영상 여러 어려운 사정이 따른다. 부족한 인력이 그 어려움의 본체다. 이를 슬기롭게 넘을 수 있는 매뉴얼을 그래서 개인이 아닌 단체에는 필수적이다. 정덕모 관장께 여기저기서 들은 칭송을 전하려 한다.

물론 나도 참 좋은 일을 했다는 생각이다. 더불어 앞서 적은 엄대섭 선생을 기념하는 기념주간도 만들었으면 하는 주문을 드리고 싶은 것이다. 남구청의 새로운 도서관 건립사업도 앞으로 매듭지어야 될 일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그러나 한꺼풀 벗기고 보면 이 일은 울산시의 품격을 한층 높이는 일이 분명하다. 그래서 이 일을 두고 시와 남구청, 울주군이 서로 잘 협조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랄 뿐이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