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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019년 1월이 끝나가려고 한다. 이곳 마산에서 개업한지도 8개월이 지나간다. 김동길 박사가 60이 지나면 이젠 세월 가는 것 느낄 새도 없이 80, 90이 된다고 하시더니만 그러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의 의미는 변함없을 듯하다. 하루는 분명 짧은 것은 아니고 병고라도 생기면 하루가 길게 느껴지지 않는가.  

하루는 어차피 우리가 해야 할 일로 채워야 지나가고 그리고 그 하루를 살아내야 여러 가지가 돌아가게 되어있다. 그런 하루 그것도 '표본적인' 하루라기보다는 '평균적인' 하루를 일상성( average everydayness)라고 한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자세히 검토하여 그 삶을 '행복한' 것이 되게 하려면 우리는 일상에서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일상을 떠나서 삶이라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삶을 좀 더 근본적으로 검토해봐야 하는 철학에서도 그렇다고 말한다.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즉 전자회사 사원, 자영업자, 구두 세공업자, 세탁소 주인 등 그런 일상의 보통 사람들이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일상이라는 것이 삶에 근본적 의미를 주고 있지 못하다면, 극단적으로 말해서는 열심히 살아도 '삶의 가치'를 실현할 수 없게 되는 것일 수 있다.

하이데거는 구두가 구두장이인 것은 아니지만 구두가 그가 살아가는 세계에서의 준거 틀이 된다고 했다. 구두를 만드는 것이 그가 이미 이해하고 있는 세계에서 의미 있는 것으로서 '사용사태'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말하자면 그가 이런 '세계개현적' 이해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아마도 구두를 만드는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구두를 수선하기 위해 망치를 드는 행위는 그것이 무의식적으로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이미 세계개현이 없다면 불가능할 것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실현해 나가는 것에서 다른 생물이나 동물과는 다르다. 내담자에게 자주 말하는 것인데, 우리가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은 도토리가 상수리나무가 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냥 토양 물 햇볕 이런 것만 주어진다고 성장하여 그 자신이 타고난 '운명' 같은 것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그가 되고자 하는 바이기도 하다. 자기 자신을 선택하고 그 존재를 떠맡는다. 하지만 나무는 자기 자신의 존재나 숙제 같은 것을 떠맡거나 책임질 수 없다. 그렇다고 누구라도 이런 또렷한 존재개념을 가지고 본래적(authentic)으로 존재해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가고, 평균적인 하루를 지내는 것이다. 그것은 철학자라도 그 일상에서는 하루 주어진 그것을 하는 것일 뿐이다.

이렇게 비본래적(inauthentic)이라 하더라도 일상은 그냥 하나의 측면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일상에서의 비본래적 행동방식에서조차 우리의 '실존'은 '선험적'으로 주어져 있다. 자신의 존재를 망각하고 또한 그것에서 피하는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자기 자신과 관계를 가지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며, 자기 소외 같은 것에서 생겨나는 곤경이나 시련에서는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게 될 수뿐 없는 처지에서 실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인간일 것이다.

일종의 자기 소외인 '신경증'에서 일상이 어렵게 되는 많은 증상을 목격하게 된다. 

일상을 지내던 때가 행복했구나 하고 느끼는 내담자를 많이 만나게 된다. 그것이 행복인지도 모르고 살았네 하면서 이제는 너무 늦은 것처럼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되는 것인데, 이제는 또다시 그 일상이 주어지지 않을 것처럼 파국이라고 느끼는 내담자가 제법 많은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그 가능성으로 실존하는 것이기에 이렇게 자신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본래적인 가능성을 보통은 '피하면서' 살아간다. 김소월 시인은 그가 일상에서 보던 달이 그렇게 밝은 것인 줄은 예전엔 몰랐다고 탄식한다. 그것을 미처 몰랐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상이라는 것을 이미 달성되고 분화되었어야 하는 것으로 보지 말라고 하이데거는 강조한다. 일상은 미분화된 상태로 있는 것이고 그리고 그것이 긍정적 요소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곳으로 우리는 반복해서 되돌아와서, 우리의 존재를 밝힐 수 있는 지평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실현은 우리가 사랑하는 생활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고, 일상을 떠나서는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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