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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한번쯤 불렀던 기억을 가진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는 윤극영의 동요다. 하지만 실상은 까치설이라는 말이 없다. 예로부터 작다는 의미의 우리말이 '아치'였는데 아치와 설을 합쳐 섣달 그믐날을 '아치설'로 부르다가 아치와 음이 비슷한 까치로 엉뚱하게 바뀐 것이 까치설의 실체다.

민간에서는 이와 다른 기원으로 삼국유사설을 이야기하고 있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까치설화는 신라 소지왕 때 일로 왕후가 한 스님과 내통해 왕을 해하려 했는데 까치와 쥐, 돼지, 용의 인도로 화를 면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쥐, 돼지, 용은 모두 12지에 드는 동물이라 그날을 기념하지만 까치를 기념할 날이 없어 설 바로 전날을 까치의 날로 정했고 까치설날이라 불렀다고 하지만 근거는 희박하다. 왜냐하면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까치는 사실 까마귀의 잘못 해석으로 출발부터 잘못된 이야기다.

설날에서의 설은 처음이자 신성한 의미로 사용된 우리말로 한 해를 맞이하는 설날 아침을 우리 조상들은 신성시했다. 설에 입는 옷을 설빔이라 했다. 설빔은 묵은해의 일들을 떨쳐버리고 한 해 동안 좋은 일이 생기기를 바라는 기원의 의미를 담고 있다. 한복은 나이와 상황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는데, 어린이들은 밝은 색의 색동저고리를 입는다. 이는 아무 탈 없이 밝게 자라나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것으로 남아들은 남색 띠를 두르고 여아들은 자색 띠를 둘러 구별하기도 했다.

설날 아침에는 떡국을 먹는데, 이는 하얀 떡과 국물로 지난 해 안 좋았던 일들을 모두 잊고 새 출발을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흰 가래떡을 길게 뽑는 이유는 '장수'와 '집안의 번창'을 의미하며, 가래떡을 둥글게 써는 이유는 옛날 화폐인 엽전의 모양을 연상시켜 물질적인 풍요를 기원하는 소망이 담겨 있다. 한해를 시작하며 풍요를 빌고 나이가 드는 것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의미가 설날 풍습에 남았 있는 증거다.

설날에도 일제 잔재는 남아 있다. 일제는 우리 민속을 파괴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햇는데 설날 고유풍습을 없애려한 것도 그 중의 하나다. 일제는 양력설을 신정, 음력설을 구정으로 구분했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는 음력설에 따라 생활했지만 태양력을 사용하는 일본은 19세기 말, 자신들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우리 고유의 설을 없애려 했다. 1월 1일을 양력설로 정한 것은 일본이 따르는 태양력을 우리나라에도 도입하기 위한 목적이었는데, 일제강점기가 되자 음력설을 옛것이라 폄하해 '구정'이라 칭하고, 새로운 양력설을 '신정'이라 부르게 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양력설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음력설을 쇠는 풍속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음력설이 다시 국가 공휴일로 지정된 것은 1985년이 되어서였고 일제강점기의 잔재인 신정이라는 명칭은 아직도 60대 이상의 세대에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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