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을 인수하기로 하면서 한국 조선업계가 '빅3 체제'를 마감하고 '빅2 체제'로 전환하게 됐다. 특히 현대중공업은 수주잔량에서 세계 1위로 올라서고, 친환경 기술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글로벌 조선업계에서 고부가가치 선박시장 주도 경쟁력을 확보할 전망이다. 다만 글로벌 1·2위가 결합한 '메가 조선사'가 탄생하기까지는 세계 경쟁 당국의 심사를 통과하고 현대가 초대형 인수합병을 충분히 감당할만큼 체력을 키워야하는 등 넘어야할 과제도 많다.
산업은행은 31일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인수합병(M&A)에 관한 조건부 MOU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이날 산업은행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대우조선 민영화 절차를 개시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이번 건은 일반적 M&A와 달리 산업은행이 보유한 대우조선 지분의 현물 출자와 인수자의 유상증자 등이 복합된 복잡한 구조를 띠고 있어 공개매각 절차로 추진하기는 불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또 다른 잠재매수자인 삼성중공업 측에도 조만간 접촉해 인수 의향을 타진할 계획"이라며 "삼성중공업으로부터 제안서를 접수하게 되면 현대중공업 조건과 비교해 최종 인수자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이날 한국산업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대우조선 지분의 투자를 유치해 '조선통합법인'을 설립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이와 관련 "이번 합의서는 국내 조선 산업의 경쟁력 회복 필요성에 대한 하나의 답안"이라고 말했다. 또 "이번 기본합의서 체결은 어느 한 기업이 다른 한 기업을 인수 합병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면서 경쟁 효과도 함께 살려나가는 방식으로 한국 조선산업의 경쟁력을 한단계 높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중공업은 이어 "이번 기본합의서 체결이 최종 계약으로 이어진다면, 세계적인 조선업체인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각각이 보유하고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노하우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럴 경우 본격적으로 친환경 기술시대로 진입하는 세계 조선시장을 주도적으로 끌고 갈 수 있는 힘을 확보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합의에 따라 '빅 3' 체제의 한국 조선업은 '빅 2'로 재편을 앞두게 됐다. 인수합병이 끝나면 현대중공업의 수주잔량은 독보적인 세계 1위로 올라선다. 영국계 조선·해운 전문 분석기관 클락슨 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현대중공업그룹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1,114만 5,000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점유율 13.9%)의 수주잔량을 보유했다. 2위는 584만 4,000CGT(7.3%)를 보유한 대우조선해양이다. 두 회사가 합쳐질 경우 총 수주잔량은 1,698만 9,000CGT로 점유율은 21.2%까지 늘어난다.
수주 물량에서 3위인 일본 이마바리 조선소 수주잔량 525만 3,000CGT(6.6%)의 3배가 넘는 규모다. 5위인 삼성중공업의 4,723CGT와 비교하면 4배에 달한다. 배를 건조하는 독 수만 놓고 보면 현대중공업(11개)과 대우조선(5개)을 합치면 16개로 늘어난다. 때문에 인수합병이 성사되면 현대중공업은 고부가가치 선박시장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클락슨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전 세계에서 발주된 LNG선 총 65척 가운데 국내 대형 3사가 수주한 실적은 56척(86.2%)에 이른다. 현대중공업그룹이 25척, 대우조선해양이 17척, 삼성중공업이 14척을 각각 수주했다. LNG선 분야에서 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해양을 합하면 42척의 LNG 선박을 수주한 셈으로 전체 LNG 선박시장의 절반을 넘어선다. 대우조선해양은 LNG 선박 건조 분야에서 앞선 기술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된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국내 조선 3사가 심한 경쟁을 하면서 서로 출혈경쟁을 벌이고 있어 오래 전부터 빅 2로 재편되는 것이 낫다는 분석은 종종 나온 바 있다"며 "현재 글로벌 조선업 시장은 과거만큼 엄청난 호황을 누리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이런 경쟁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분석이 많아 '슈퍼 빅 1'과 '빅 1'으로 국내 시장이 재편되면 경쟁 강도가 낮아지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 인수를 완료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과 합치려면 국내뿐 아니라 유럽, 미국 등 전 세계 경쟁 당국의 기업결합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기업결합 심사 자체가 통상적으로 수개월이 걸리는 데다 자칫 '메가톤급' 조선사의 탄생이 독점 체제 논란을 불러올 경우 문제는 복잡해질 수 있다.
또 최근까지 구조조정을 단행한 현대중공업은 이를 극복하고 단시간에 초대형 인수합병을 충분히 소화해내야 한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최근 현대오일뱅크 지분 매각을 통해 1조 8,000억 원의 실탄을 마련했으나 아직 글로벌 조선업황의 수주절벽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여서 메가톤급 인수·합병이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또 양사 노조의 반발도 큰 변수이자 난제다. 양사 노조 지회장은 조만간 만나 인수합병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현대중공업 노조는 이날 예정된 임·단협 2차 잠정 합의안의 조합원 찬반투표를 위한 총회 개최를 잠정 연기했다.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따라 조합원들에게 미칠 영향을 파악할 때까지 합의안 투표를 미룰 예정이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경영이 어렵다며 구조조정을 했던 회사가 막대한 돈을 들여 대기업을 인수하는 사실에 분노한다"며 "사용자 측이 2차 잠정 합의를 서둘렀던 배경이 대우조선 인수 추진 때문"이란 성명을 발표했다. 현대중공업 측은 "오는 28일까지 공모를 진행하기 때문에 삼성중공업의 결정에 따라 계약이 달라질 수 있으며 삼성중공업이 포기한다면 3월 8일 본계약이 체결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아직 확답할 수는 없다"며 "구체적인 내용은 검토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하주화기자 usjh@
- 기자명 하주화
- 입력 2019.01.31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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