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신문
  • 승인 2019.02.07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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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성제 수필가

그날따라 오전 강의는 피를 토하듯 했다. 도서관에 지원금이 줄어들어 더 이상 내가 맡은 강좌를 진행시킬 수 없다는 통고를 받고 알퐁스도데의 '마지막 수업'처럼 마음이 탔다. 아직 첫돌도 되지 못한 수강생들에게 강제로 젖을 떼고 떠밀려나야 하는 엄마가 된 기분이었다. 십리사탕 같은 뭐라도 하나 입에 물려서 보내고 싶은 마음에 열강을 하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마치는 시간이 지나있었다. 

수강생들에겐 간식거리일지도 모를 이 수업이 나에겐 주식이며 삶이다. 주식이지만 때론 대충 때울 때도 있고 때론 온갖 정성을 들이기도 한다. 늘 차리고 먹는 밥, 별 것 있나싶어 습관적으로 대할 때도 있지만 한 끼라도 미리미리 생각하고 준비하여 대하려 한다. 이렇게 사는 게 다 육의 밥을 먹기 위한 것인가. '살기 위해 먹는가? 먹기 위해 사는가?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창조론 적으로 보면 닭이 먼저이니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밥을 먹는다는 편이 맞겠다. 

도서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밥 먹기 좋은 관청의 구내식당이 있다. 직원들이 북적거리는 시간만 조금 피하면 딱 이다. 값이 싼 데다 골고루 갖춘 영양소에 따끈한 숭늉까지 누릴 수 있다. 외부인 들에게도 개방해 놓아 한 끼 행복한 밥상을 누릴 수 있는 그 곳이 친정만큼이나 푸근하다. 

지나는 길목, 도서관수업을 마치고 무거운 발걸음에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자 들른 그날, 한 아주머니가 한산해진 식탁을 둘러보며 식권기기 앞에 선 나에게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했다. 내일부터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아, 내일부터는 너무 늦게 오면 안 되는구나 싶었더니 이제부터는 직원 아닌 이들에게는 급식하지 않게 됐다고 덧붙였다. 식기를 챙겨드는 나를 보며 또 한 아주머니가 "직원들이 불편해서 그렇습니다"라고 했다. 

나는 밥을 푸고 찬을 담아 자리를 잡았다. 바로 앞 식탁에서 홀쭉한 등산 가방을 곁에 놓고 혼자 식사하는 초로의 등이 보였다. 그의 식기엔 후식으로 나온 도넛도 수북이 담겨 있었다. 주방 아주머니들의 식사도 그제야 시작되었는데 마침 내 식탁 옆자리에 둘러앉았다. 직원들에게 무엇이 불편했는지 물어보았더니 외부인들 때문에 오랜 시간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이 힘들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외부인들이 점심시간 되기도 전부터 와서 먼저 밥을 먹는 바람에 식사시간이 부족하다고 했다.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주객이 전도된 격이니 할 말이 없었다. 나도 이곳에 들러 이른 점심을 해결했던 날들이 종종 있지 않았던가. 그때마다 식판을 들고 길게 줄 선 모습을 보았다. 값이 싸며 맛도 좋고 양껏 덜어 먹을 수 있는 밥으로 한 끼를 해결하고자 했던 외부 인들의 처우가 직원들의 업무에 지장을 끼쳤다니 나도 미안했다. 그러면서 괜히 울적했다. <죄송하지만 외부 인들은 직원들의 식사 시작 시간보다 조금만 늦게 와주십시오!>라는 안내판이 어딘가에 세워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 공고를 알았더라면 오후 공무를 위해 그 정도 배려는 누구나 할 수 있었을 성싶은데 그게 잘 되지 않았나 보다. 

관청(官廳)이란 단어에서 청(廳) 자에는 집 엄 속에 들을 청(聽)이 깃들어 있다. 백성들의 소리를 듣는 기관이란 뜻이겠다. 관청의 먼저 배려에도 불구하고 일찍 와서 업무에 지장을 주었던 외부인 들이었지만 어쨌든 이곳 밥을 의지해왔던 마음들은 불편하고 안타까울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에 묻혀 먹는 구내식당의 마지막 밥이 시장기 때문인지 유달리 맛좋기도 했지만 한편 당장 다음 주면 도서관수업을 그만 둘 수밖에 없는 데다 이 식당에서의 좋은 밥도 더 이상 먹을 수 없다는 생각에 입속이 까끌했다.

다음 일정이 빠듯했지만 주방 아주머니들도 뒷설거지를 해야 하기에 얼른 자리에서 일어섰다. 초로의 그는 아직도 식사가 덜 끝난 모양이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숟가락질이 바빠 보였다. 눈치껏 일어서줘야 할 텐데 싶어 나는 일부러 소리 내어 식기와 의자를 정리하고 큰소리로 잘 먹었다는 인사를 했다. 주방 아주머니들의 잘 가라는 인사에 괜히 콧날을 시큰거렸다. 

이제 직원들은 점심식사를 위해 기다리는 시간이 줄었을 것이다. 외부인 들이 와서 먼저 밥을 푼 흔적 없이 새 밥을 대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조금은 조용해진 식당에서 약간은 여유롭게 이야기도 나눠가며 밥을 먹을까. 이런 사정을 미처 몰라서 아직도 헛걸음하여 되돌아가는 사람들은 없는지. 

밥! 살기 위해 당연히 먹어야 하는 이 밥 앞에 크든 작든 끊임없는 바람이 분다. 행여 어떤 바람이 휘몰아쳐 끝 간 데 없이 힘겨워지는 날만큼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은 이 삶이여, 밥이여, 생명이여.